일국의 왕자를 태운 호송 차량 10대가 행렬을 이루어 달리고 있다. 이때 갑자기 BMW 2대에 탄 무장 강도들이 소총을 난사하며 나타나 길을 가로막는다.

여러명의 강도들은 민첩하게 각자의 임무를 실행하며 호송 차량들 전체를 제압하고 이 가운데 차량 1대를 탈취해 눈깜짝할 사이에 유유히 달아난다. 이 차량엔 탑승객 3명이 타고 있으며 수억 달러의 현금과 중요한 외교문서도 함께 실려 있다. '007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오션스 일레븐'이나 '미션 임파서블'의 장면도 아니다. 프랑스 북부에서 실제로 일어난 무장 강도 사건이다. 

AFP통신은 18일(현지시간) 프랑스를 방문한 사우디아라비아 왕자가 탑승한 차량 행렬이 하루 전인 17일 노상에서 무장 강도의 공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파리 경찰에 따르면 무장 강도들은 왕자 호송 차량 1대를 탈취하고 그 안에 실려 있던 현금 약 25만유로(약 3억4000만원)와 '민감한'(ensitive) 외교문서들을 털어갔다.이 영화 같은 강도 사건은 이날 저녁 신원미상의 사우디아라비아 왕자를 태운 차량 행렬이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고급 호텔에서 르부르제 공항으로 가는 도중 파리 북부 포르트 드 라 샤펠 인근 지역에서 발생했다.

경찰은 5~8명의 강도들이 2대의 BMW 차량에 나눠 타고 왕자를 호송 중이던 약 10대의 차량 행렬에 접근해 맨 앞의 차량을 탈취했다고 밝혔다. 이 차량에 타고 있던 3명도 함께 납치됐다.

이 과정에서 사우디 왕자는 무사했고 그 외 특별한 인명 피해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강도들에게 피랍됐던 차량에 탑승했던 운전기사와 다른 2명의 탑승자들은 잠시 억류됐다가 무사히 풀려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들과 프랑스 일간지인 '르파리지앵'은 이 강도들이 칼라시니코프사가 제작한 라이플총들로 무장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 관리는 이들이 권총을 들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날 피랍된 사우디 측의 메르세데스 차량과 강도들이 타고 있던 BMW 차량은 나중에 파리에서 북동쪽에 있는 생 메스메 마을에서 불에 타 버려진 채 발견됐다. 차량이 발견된 장소는 사건 현장과는 약 40km 떨어진 곳이다. 

이날 일어난 사건은 그 자체가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또한 사우디 왕자의 신원도 밝혀지지 않았고 강도들이 노린 것이 돈이었는지 아니면 외교문서였는지도 확실하지 않아 상상과 의문을 증폭시키고 있다.  

경찰은 전소된 2대의 차량들이 발견된 현장 부근에서 500유로짜리 지폐 2장과 아랍어가 적힌 문서와 약품 등을 발견했다.

르파리지앵에 따르면 강도들은 '민감한' 외교문서들을 강탈해갔다. 

이 사건의 조사에 참여한 한 정통한 소식통도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우디 측이 강탈당한 물건이 외교문서라고 확인했다.

다만 그는 "현재 이 문서가 어떤 내용인지는 우리도 모른다"며 "이 문서들은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나 반대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프랑스 외교부의 로맹 나달 대변인은 "이 용납하기 힘든 강도 습격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라고만 짤막하게 밝혔다. 

한 경찰 관계자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주 이례적인 공격이며 이 강도들은 충분한 사전정보를 가지고 공격한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니콜라 콩테 프랑스 경찰총장은 "강도들이 노린 것이 돈이었는지, 외교문서였는지를 먼저 알아내야 한다"며 "사우디아라비아 당국도 우리의 수사에 협조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이 사건에 대한 조사는 무장 강도들을 전담 수사하는 BRB 특수경찰로 넘어간 상태다.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에 정통한 익명의 한 소식통은 "만약 강도들이 노린 게 돈이 아니라 외교문서였다면 이 사건의 성격은 완전하게 달라지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 경우 이는 단순한 무장 강도 사건이 아니라 그보다 더 복잡한 사건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 소식통은 초동 수사에 드러난 사실은 강도들이 분명하게 "특정한 물건을 찾기 위해 특정한 차량을 공격했다는 점이 밝혀졌다"고 강조했다.

현재 이 사건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의문들 중 풀린 것은 하나도 없다.   

    

ace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