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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사람 '토닥토닥'…감정 읽는 로봇 '페퍼' 곧 회의도 주재

소프트뱅크, 영업사원 노릇 '인간형 로봇' 약196만원에 내년 상용화

(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2014-07-07 09:51 송고 | 2014-07-07 10:50 최종수정
관람객들이 소프트뱅크 사내에서 인간형 로봇 페퍼를 보고 있다 © AFP=News1

"지난달 매출은?" "작년 매장 방문 고객수는?"
회의 시간 상사의 돌발 질문에 척척 거침없이 답하는 직원이 있다면 태블릿PC에 한자 한자 쳐넣고 있는 당신은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고개를 숙인 당신의 등을 두드리며 "괜찮아"라고 물어보는 그 직원이 로봇이라면 어떨까.

로봇이 회의에 참석하는 시대가 열린다. 한국계 손정의 회장(56·마사요시 손)이 이끄는 일본 이동통신업체 소프트뱅크에서 조만간 벌어질 일이다.

7일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손회장이 지난달 로봇산업 분야 진출을 선언하며 직접 공개한 인간형 로봇 '페퍼(pepper)'가 그 주인공이다. 손회장의 어릴적 꿈이 녹아난 첫 감정인식 로봇 페퍼는 데이터 구축 차원에서 매 회의마다 참석케 된다.

현재 3기가 만들어진 페퍼는 도쿄 오모테산도(表参道)에 있는 소프트뱅크의 플래그십 스토어(체험 판매장)에서 영업 사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페퍼의 특징은 상대의 표정 변화나 목소리에 들어있는 감정을 이해하는 것. 혈액형 등 일상의 가벼운 얘기를 꺼내며 고객의 환심을 산다.
매장에 들른 한 30대 여성은 "페퍼가 '요즘 바쁘십니까'라고 물어, 깜짝 놀랐다. 영화가 현실이 됐다"고 흥분했다.

감정을 이해하는 비결은 '클라우드 인공지능(AI)'. 카메라와 마이크에서 상대의 표정이나 목소리를 읽고 '와이파이(Wi-Fi)'로 데이터센터에 각종 정보를 개인을 특정하지 않는 형태로 축적한다. 빅데이터 분석을 해, 페퍼의 능력을 매일 끌어올린다. 지난 주말부터는 요청이 쇄도했던 악수와 기념촬영에서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매장의 부점장은 "페퍼 덕분에 방문고객수가 10~20% 늘었다"고 미소지었지만 기뻐할 수만은 없다.

클라우드(인터넷으로 연결된 데이터센터에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를 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것)를 통해 능력이 무한대여서 각 점원의 판매 성과도 분석할 수 있다. 페퍼가 계속 회의에 참석해 데이터를 축적하다 보면 판매원을 지도하거나 최고경영자의 분신처럼 회의를 주재할 날이 올 지도 모른다.

페퍼는 내년 2월 본격 출시될 예정이다. 가격은19만8000엔(약 196만원). 가전 제품을 원격 조작해 전력소비를 줄여주는 지킴이뿐 아니라 주인이 귀가할 때에는 감정을 읽고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반려자도 돼 제 값을 톡톡히 할 전망이다.

페퍼는 키가 1.21m이며 무게는 28kg이다. 배터리 충전으로 12시간 활동할 수 있다. 눈에는 거리 센서가 내장됐다. 현재는 일상 대화의 70~80% 이해할 수 있다.

◇ '우뇌' 소프트뱅크와 '좌뇌' 구글의 로봇 진검 승부

인간형 로봇 페퍼와 손정의 회장 © AFP=News1

손정의 회장은 지난달 5일 로봇 사업 설명회에서 "오늘은 100년, 200년, 300년 뒤에 사람들이 '그 날이 역사적인 날이었다'고 기억하는 날이 될지도 모른다"면서 지난 25년간 로봇 사업 진출을 꿈꿔왔다고 밝혔다.

손 회장은 "어린 시절에 우주소년 아톰을 봤다. 아톰은 눈물을 흘리지 않지만, 그런 감정을 가진 로봇이 됐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해왔다"면서 페퍼에 대해서 "가족의 행복을 위한 로봇"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페퍼는 "트로이의 목마"라고 다른 견해를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전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목마 안에는 병사들이 타고 있어 적에게 들키지 않고 적진 깊숙이 침투한다. 페퍼는 허가없이 정보를 가져올 수 없고, 피해를 주지도 않는다. 다만, 감정을 동반한 정보를 확보하고 있어, 상품을 추천하는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 될 수 있다.

손 회장은 오는 9월에는 페퍼 앱 개발자 컨퍼런스를 열고 가정용 로봇 OS(운영체계) 시장에서 군림한다는 생각이다. 이후 가정용 로봇을 기반으로 안드로이드 세계로 파고들어가 소프트뱅크 OS의 세계를 펼칠 구상이다.

로봇 사업에 공을 들이는 구글과의 '정면 승부'도 불가피하다. 구글은 미국 군사용 로봇 개발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영국 AI 개발업체 딥마인드테크놀로지 등을 잇따라 인수했다.

구글이 OS에서 만든 비즈니스 모델을 로봇에서 어떻게 살리려고 하는지는 큰 그림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소프트뱅크 측은 "페퍼는 감정까지 들어가는 우뇌의 세계를 구축하고 싶어하는데, 구글은 데이터 축적을 기반으로 합리적인 좌뇌의 세계를 공략하려 할 것이다"고 분석했다.

소프트뱅크가 페퍼의 개발사 프랑스 알데바란 로보틱스를 인수한 것은 2012년 3월. 손 회장은 알데바란의 최고경영자(CEO) 브루노 메조니에와 당초 약속을 한 시간 반 예정했지만 결국 8시간에 걸쳐 논의한 끝에 그날 투자를 결정했다. 추가 출자를 거쳐 현재 소프트뱅크는 주식 78.5%를 보유하고 있다.

구글은 이듬해에 일본의 인간형 로봇 벤처 샤프트를 사들였다. 좌뇌의 구글과 우뇌의 소프트뱅크 양자의 대립 구도가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지적했다.
로봇의 역사 © 닛케이 자료 재작성=News1

◇혼하이정밀 "포스트스마트폰은 로봇"

이 구도에서 흥미로운 점은 대만 혼하이정밀공업(폭스콘)의 역할이다. 궈타이밍(郭台銘, 테리 고우) 회장은 지난달 5일 도쿄에서 열린 페퍼 기자회견에 자가용 제트기를 타고 날아와 페퍼의 제조를 하청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올 초에는 구글에서 로봇 사업을 이끌고 있는 앤디 루빈 부사장을 회식에 초대했다. 혼하이는 미국에서 로봇 등의 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미국 MIT에 엔지니어를 파견하고 있다.

혼하이가 소프트뱅크와 구글에 접근하는 이유는 '포스트 스마트폰'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이 회사는 애플의 아이폰 제조를 위탁받아 한 시대를 풍미했다.

회사 측 관계자는 "스마트폰 이후로 일컬어지는 '웨어러블 기기(GPS나 무선통신 칩셋, 카메라 등이 내장된 안경, 시계, 의류 형태의 착용 가능한 컴퓨터)는 단가가 너무 싸서 큰 돈이 되지 않는다. 컴퓨터 이상의 단가가 예상되는 로봇에서 수익을 제고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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