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르포]혁신학교 수업 현장을 가보니…'학력저하' 우려는?

[혁신학교, 오해와 진실 中]능동·참여 학습, 학생 모두가 학력증진 유도
품행·인성 교육 성과 뚜렷…학생, 교사 만족도 높아

(서울=뉴스1) 임해중 기자, 최동순 기자 | 2014-06-16 22:29 송고 | 2014-06-26 09:37 최종수정

연재 목차
[上]혁신학교 들어서면 '집값' 오른다?…상관 관계는
[中]'학력저하' 편견, 수업혁신으로 해소…품행·인성 교육도 성과
[下] '반쪽' 혁신학교 안되려면…"진보·보수 '틀' 깨야"

#.지난 16일 서울 구로구에 자리 잡은 오류중학교의 과학수업 현장. 머리를 맞댄 학생들이 혼합물 분리와 관련된 의견을 나누며 정답을 찾고 있었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교사가 칠판에 빼곡히 적어주던 공식과 문답풀이를 받아쓰는데 바쁜 일반 교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로 이어지는 토론은 자유로웠지만 제멋대로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능동적이고 집중적으로 교과내용을 이해했고 서로가 선생님을 자처했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4∼5명의 학생들이 함께 내놓은 답에 대해 '정답'과 '오답'을 구분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이 올바른 답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역할에 초점을 맞췄다. 수업 종이 울릴 때쯤 교과단원을 완전히 숙지한 학생들은 밀도의 정의와 용해도 차이를 이용한 분리 등 좀 더 심화된 내용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물론 졸거나 '딴짓'을 하는 학생은 없었다.

김영숙 오류중 교장은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흔쾌히 수업 참관을 허락했다. 매달 열리는 공개수업이 아니었지만 4년에 걸친 학년 연구회를 통해 다듬어진 혁신수업에 대한 자신감이 드러나는 듯 했다.
2학년과 3학년 교실에서도 수업을 포기한 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학생들은 서로가 격려하며 소외된 학생 없이 수업에 참여했다. 외교관이 꿈이라는 남학생은 "영어를 잘하는 친구와 함께 모둠을 구성했는데 자극을 받으면서 모르는 부분을 함께 공부하다보니 수업이 즐겁다"며 밝게 웃어 보였다.

◇밀어주고 끌어주고…혁신학교는 '모두가 공부하는 교실' 오류중학교에서 진행되는 모둠 수업, 학생들이 함께 토론하고 정답을 깨치는 방식을 통해 '모두가 함께 공부하는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사진=임해중 기자© News1

혁신학교는 당초 체험이나 인성 교육에 매진하는 대신 교과수업을 도외시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학력 저하'에 대한 우려의 시선을 받아왔다. 이는 '성적향상=주입식 교육'이라는 선입견에서 비롯된다는 게 혁신학교측의 설명이다.

혁신학교는 공교육 정상화와 경쟁·주입식 교육 혁파를 설립 이념으로 삼고 있지만 충실한 교과학습을 통해 "모든 학생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만 기존 학교와 달리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구별하지 않고 학생들이 스스로 강점은 나누고 약점을 보완해나가는 수업방식을 선택했다는 게 차이다. 학생은 능동적으로 학습을 주도하고 교사는 이를 도와주는 이른바 '수업혁신' 시스템이다. 이런 방식은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주로 초·중학교에서 이뤄진다.

2011년 혁신학교로 지정된 오류중의 경우 '모둠'이라고 불리는 교과수업에서 ㅁ자형 책걸상 배치로 시작해 아이들이 토론을 시작할 때면 ㄷ자형으로 4∼5명씩 모여 앉도록 한다. 학급당 학생 수가 29명 남짓인 점을 감안하면 5∼6개 내외의 모둠이 구성된다. 교사가 토론이 진행되는 모둠을 한 눈에 살피면서 교과목과 관련된 조언이나 대답을 이끌어 내기가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최부섭 오류중 교사는 "수업혁신은 학생들에게 정답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정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핵심"이라며 "무엇보다 성적이 좋은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을 나누지 않고 학생과 학생, 교사가 함께하는 참여형 학습을 통해 모두가 즐겁게 공부한다는 점에 수업혁신의 참 뜻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고등학교 중에서는 학생 적성별로 맞춤형 진학 지도를 병행하고 참여형 학습을 통해 대학 진학률을 끌어올린 강북의 삼각산고가 눈에 띈다. 올해 첫 졸업생이 배출된 이 학교는 48명의 학생이 서울의 주요 대학 진학에 성공했고 이중 43명이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대학생이 됐다.

삼각산고는 학생들의 다양한 잠재능력을 계발한다는 목표로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이 자신만의 연구주제를 잡아 1년에 하나씩 소논문을 작성하는 식으로 이 수업을 거친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크게 향상되며 입학사정관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주제를 정해 장문의 글을 완성하는 과정을 경험하며 대학생 수준의 학과 이해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2012년 이 학교가 발간한 우수작 자료집에 실린 소논문들은 일반 대학의 리포트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김정안 삼각산고 교사는 "두레라는 이름의 자율 협력 활동을 통해 일반 과목은 물론 미술, 음악 등 부문에서 학생들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문화가 형성됐다"면서 "이런 교육방식은 협력에 따른 학력 상승효과와 함께 소수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학교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는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단순 성적비교 '곤란'…품행·인성 교육 성과 뚜렷 삼각산고.의 모습. 대학 진학률 상승은 물론 학교폭력 발생 0건을 기록하는 등 혁신학교 지정 이후 다양한 부문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다/사진=최동순 기자© News1

이런 긍정적인 변화에도 일각에서는 혁신학교와 일반 고등학교의 성적을 비교하면서 혁신학교의 성과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나온다. 한 언론매체가 서울형 혁신학교 6곳과 강남구 일반고 13곳의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비교한 뒤 "혁신학교의 학력저하가 심각"하다고 보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매체는 강남구 일반고의 수능시험 2등급 이내 학생 비율은 24.3%인 반면 혁신학교는 이 비율이 5.3%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근거로 혁신학교의 학력저하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교육현장 일선에서 일하는 교사들은 이같은 해석은 단순 성적비교에 따른 잘못된 결론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직 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서울형 혁신학교는 사회·경제적 여건이 열악한 지역에 설립된 경우가 많은데 입시교육에 특화된 강남 학군의 학교들과 시험성적을 비교하는 일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성적과 학부모들의 소득수준에 따라 진입장벽이 형성된 자사고와 외고, 강남 학군이 우수한 학생들을 빨아들이면서 외곽지역의 일반고 슬럼화는 심화됐다"며 "성적에 따라 고등학교의 서열이 결정되는 현재 교육제도 아래에서 이들 학교끼리의 성적비교를 통해 학력수준을 판단하면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 전문가는 "서울형 혁신학교 도입 4년차를 맞아 학생들의 전체적인 학력향상은 물론 다양한 부문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다"며 "대입제도 개선을 병행해 국·영·수에 '올인'하는 기형적인 교육 시스템을 바로잡고 혁신학교가 정상학교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할 때"라고 덧붙였다.

혁신학교의 성과는 학생들의 품행이나 인성 교육 부문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몇 년 전까지 잦은 사건·사고로 교사들이 부임을 기피했던 오류중에서는 소위 '왕따 문제'가 적발되거나 이와 관련된 상담은 아예 사라진 상태다.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를 이용해 진행되는 생활체육활동, 교내 야영 등의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며 학생들 스스로가 공동체와 협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소 체득한 결과다.

이날 반 대항 이어달리기에 참여했던 여학생은 "학교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방학이 되면 친구들과 선생님이 보고 싶어 정말 빨리 개학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며 "부모님이나 교우들 사이에 문제가 있어 교무실이나 학년부를 찾아가면 모든 선생님들이 내 일처럼 이야기를 들어줘서 가끔은 학교가 집보다 더 편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삼각산고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2011년도 개교당시에는 3건의 학교폭력이 발생했지만 지난해에는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학교 인근의 상점 주인은 "얼마 전 '놀아 보이는' 학생들이 가게 앞에 있어 여기 있으면 장사 방해된다고 말했더니 환하게 웃으며 죄송하다고 하더라"며 "혁신학교로 지정되고 난 뒤 아이들 표정도 밝아져 보고 있으면 뿌듯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강옥경 오류중 교사는 "혁신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아이들과 교사들의 만족도나 효과적인 생활지도, 학교의 공동체 의식 형성 등 다양한 부문에서 성과가 드러나고 있다"며 "혁신학교 학생들의 자기 효능감이 일반학교보다 높다는 경기도교육연구원의 조사결과가 이런 성과를 통계적으로 확인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haezung2212@news1.kr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