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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바보' 한솔이 아빠 "차마 사망신고를 할 수 없었어요"

[세월호참사] 딸 장례식 치르고 다시 진도로…실종자 가족들과 생활
"시신 유실 우려로 선체인양은 안돼, 끝까지 수색작업 지켜보겠다"

(진도=뉴스1) 김한식 기자 | 2014-05-10 02:44 송고 | 2014-05-10 05:07 최종수정
세월호 침몰사고 24일째인 9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한 실종자 가족이 바다를 바라보며 노란리본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다. 2014.5.9/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안당해본 사람을 모릅니다. 지금도 제 딸이 저쪽에서 아빠하고 부르면서 달려올 것 같아 미치겠습니다."
참고 참았던 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러기 싫어 (인터뷰) 안하려고 했는데…"라며 안경을 벗고 고개를 돌리는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자신을 "단원고 2학년 9반 한솔이 아빠라고 해주세요. 이한솔"이라고 소개한 그를 9일 오후 7시께 진도실내체육관 출입구 옆에서 만났다.

"지난 2일 한솔이를 찾았습니다. 사고해역 바지선에 올라가서, 팽목항에서 그렇게 불러도 나오지 않던 녀석이 17일 만에 물 밖으로 나오더군요. 엄마 아빠가 차 막혀 고생할까봐 연휴 시작 전에 말입니다. 가는날 때까지 효도하고 싶었는지…."
그는 "한솔이는 저에게 전부였습니다. 엄마와 남동생을 딱부러지게 챙기는 것도 그렇고 뭐 하나 나무랄게 없는 아이었다"며 "막상 이렇게 떠나보내고 나니 너무 많이 못해줘 미안하고, 후회스러울 뿐"이라며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알루미늄 창틀을 만드는 일을 하는 그는 비교적 빠른 24살에 동갑내기 아내와 한솔이를 얻었다. 여느 아빠가 그렇듯 그도 지독한 '딸바보'였다. 아내보다는 그가 어린 한솔이의 옷과 간식을 도맡아 사줬다.

비록 여유 있지는 않았지만 한솔이가 해달라는 것은 다해줬다. 특히 한솔이가 교복을 입을 무렵 기쁨 중에 하나는 신발을 사주는 것이었다. 어떤 것을 신으면 교복이 예뻐 보일까 하는 생각에 사준 신발이 수십 켤레였다.

"제가 유달리 이뻐해줘서 그런지 한솔이도 저를 잘 따랐습니다. 또래 친구들과 지내기를 더 좋아하는 고등학생이 된 뒤에도 제 친구들 모임에 곧잘 참석했습니다. 친구들이 두둑하게 챙겨주는 용돈을 받아들고 제 팔짱을 낀채 환하게 웃는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그는 "자식 자랑하면 팔불출이라고 한다고 하지만, 제 아내는 '어떻게 내 속에서 저런 얘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정말 기적같은 일'이라고 기뻐할 정도로 한솔이는 우리 부부에게 정말 소중하고 귀중한 아이였다"고 했다.

그런 그는 "사실 요즘에는 생활이 더욱 어려워 수학여행 하루 전에야 경비 30만원을 입금했습니다. 차라리 그 돈을 안줬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한솔이도 30만원은 너무 큰 돈이어서 수학여행을 안 간다고 했었다"며 "그런 생각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며 가슴을 쳤다.

한솔이의 마지막 모습 때문에 그는 더욱 괴롭다고 했다.

"수학여행 가기 2~3일전에 오른쪽 다리 인대가 찢어져 깁스를 했었거든요. 마지막까지 그 모습 그대로이더군요. 아마 다친 다리 때문에라도 한솔이는 탈출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지금 집에 남아 있는 오른쪽 신발 한 짝을 가슴에 품고 우리 부부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는 한솔이 장례식과 삼우제를 지낸 지난 6일 곧장 다시 진도로 내려와 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생활하고 있다.

이 곳이 싫지 않냐는 질문에 "제가 9반 가족 반 대표였습니다. 비록 한솔이는 찾았지만 끝까지 한솔이 친구들 찾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아내도 '원없이 지내다 오라'며 흔쾌히 허락해줘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 발생 10일이 지난 이후부터 시신 훼손이 심해졌다"면서 "제 집사람도 그랬지만 엄마들은 자기 자식의 마지막 얼굴을 보지 못하고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수색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심스럽게 인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자식을 찾은) 제가 다른 가족들에게 뭐라고 말을 하겠느냐"면서 "하지만 선체를 인양할 경우에는 물이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시신 유실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영영 자기 자식이나 부모 형제를 찾지 못할까 하는 것이다. 인양은 지금 얘기를 꺼낼 단계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특별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간 세월호 승무원과 선사인 청해진해운 관계자를 처벌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1순위가 수색작업이고, 잠수부들이 그 누구보다 가장 소중합니다."

그는 "사고 첫날 사고해역 바지선으로 달려갔을 때 해경은 잠수요원 139명이 구조작업을 한다고 발표했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2인 1조로 4명이 구조하고 있다고 하더라"면서 "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일 정부 브리핑을 듣지만 이제는 믿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매일 실망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으로 수색작업을 끝까지 지켜보며 잠수부들을 격려하고, 때론 해경과 싸우겠다는 그가 아직 하지 못한 일 하나가 남아 있다. 한솔이의 사망신고다.

"장례식과 삼우제때 다 보내줬습니다. 엄마 아빠의 잘못도, 친구들 편지와 선물도, 애지중지 아끼던 옷과 신발도….그런데 제 손으로 사망신고할 자신이 없어 도망치든 내려와 버렸습니다. 그게 마지막 끈인 것 같고, 차마 놓질 못하겠더라구요."

그는 "한솔이가 3학년이 되기 전인 올 여름방학때,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친구들과 캠핑을 하고 싶다고 해서 꼭 그렇게 해주겠느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 약속도 지킬 수 없게 됐다"면서 "한솔이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 그토록 좋아하는 술조차 마실 수가 없다. 너무 많이 마시게 될 것 같다"고 울먹였다.

긴 한숨과 함께 잠시 후 애써 마음을 진정시킨 그는 "우리 이쁜 한솔이 한번 보실래요" 하며 휴대폰 속에 담긴 사진을 보여줬다.

돌 잔치때부터 유치원, 초등학생, 그리고 제법 숙녀 티가 나는 최근의 모습까지 사진 속의 한솔이는 아빠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hs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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