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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버린 제일모직의 승부수…통할까?

'글로벌 소재기업' 도약 위해 패션사업 에버랜드에 양도…"사명변경 미정"

(서울=뉴스1) 백진엽 기자 | 2013-09-23 02:22 송고

1980년대 패션사업, 1990년대 화학사업, 2000년대 전자재료사업 진출 등 지난 수십년간 주력사업 변신을 꾀해온 제일모직이 또한번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번엔 신규사업으로 확장하는 게 아니라,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주력사업을 '선택'해서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제일모직은 23일 이사회를 열고 패션사업을 삼성에버랜드에 양도하기로 결정했다. 양도가액은 1조500억원. 제일모직은 패션사업을 매각해 확보한 자금으로 전자재료와 화학 등 소재사업에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패션으로 시작한 기업이 모태사업인 패션을 버린 것은 이익률이 낮은 패션 대신 미래 먹거리사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소재쪽에 집중해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초일류 소재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제일모직의 비전에 '패션'은 없었다

사실 제일모직은 이미 '패션'기업에서 벗어난지 오래다. 1990년대 화학사업, 2000년대 전자재료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패션'보다 '패션'의 소재를 개발하는데 더 주력해왔다. 20년동안 첨단소재 사업에 집중 투자한 덕분에 제일모직에서 화학과 전자재료 등 소재사업이 차지하는 매출비중은 지난해 70%에 달했을 정도로 커졌다. 이에 비해 1980년대 제일모직의 주력사업이었던 패션사업의 매출비중은 30%로 줄어들었다.

제일모직이 패션사업을 에버랜드에 양도하기로 결정한 배경도 같은 맥락으로 읽혀진다. 1990대 화학사업에 뛰어들면서 주력사업을 '첨단소재'로 방향을 틀었던 제일모직은 이번 패션사업 양도를 통해 첨단소재 전문기업으로 입지를 더욱 굳히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매출이 2조원에 육박하는 사업부문을 포기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올 상반기 제일모직의 패션(기타부문 포함) 매출액은 9500억원이었다. 제일모직은 패션부문에서 캐주얼 브랜드 '빈폴'과 신사복 브랜드 '갤럭시', '로가디스', 여성브랜드 '구호' 등의 의류를 생산·판매해왔다.

이에 제일모직 관계자는 "패션사업이 결코 작은 것이 아니지만, 이를 포기하고 기업의 역량을 한 곳으로 집중해 2조원보다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경영진의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을 비롯해, 박종우 대표이사, 윤주화 패션부문 총괄사장 등이 '글로벌 초일류 소재기업'이라는 제일모직의 비전을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는 설명이다.

또 패션업은 제일모직의 주요 사업부문 3개 중 영업이익률이 가장 낮다. 전자재료부문이 10.8%, 화학부문이 2.9%인 것에 비해 패션부문은 2.1%에 불과하다. 또 패션사업은 소재사업처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지는 않을지라도 매 시즌 트렌드 파악, 새로운 브랜드 런칭 또는 인수 등 손이 많이 가는 사업이다. 때문에 패션업을 계속 안고 갈 경우 기업의 역량이 적지않게 분산될 수 있고, 이것이 제일모직이 이번에 양도를 결정한 이유로 파악된다.

◇에버랜드는 '의식주 종합기업'으로 도약 마련

반대로 이번에 패션업을 양수하기로 한 삼성에버랜드는 제일모직과는 다르다. 제일모직 입장에서 패션사업이 다른 사업들과 시너지가 없었다면, 삼성에버랜드는 패션사업을 통해 한단계 성장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많다. 삼성에버랜드의 기존 사업들이 테마파크, 골프장, 리조트 등 '소프트 사업'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패션업까지 더해 '의식주 종합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 회사측의 기대다.

김봉영 삼성에버랜드 사장은 "이번 제일모직 패션사업 인수를 통해 패션 사업을 중장기 성장의 한 축으로 적극 육성할 것"이라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모멘텀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에버랜드는 제일모직이 보유한 글로벌 디자인 역량을 테마파크, 골프장 운영 등에서 축적한 노하우와 결합해 패스트 패션, 아웃도어, 스포츠 분야 등에서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민연금·KCC 등 주주들은 승낙할까

이번 사업양도의 큰 변수 중 하나는 국민연금공단, KCC 등 제일모직과 삼성에버랜드 주요주주들의 의중이다. 즉 주식매수청구권이 얼마나 될지가 중요하다.

제일모직은 매수청구 규모가 7000억원이 넘을 경우 이번 거래는 취소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제일모직의 최대주주는 10.07%를 보유한 국민연금공단(9월11일 기준)이며 한국투자신탁운용(7.25%)이 뒤를 잇고 있다. 삼성카드 등의 지분은 7.15%, 삼성자산운용의 지분은 5.04%에 불과하다. 국민연금공단과 한국투자신탁운용이 보유한 지분(17.32%)의 가액은 8737억원에 이른다. 5% 미만 지분을 보유한 소액주주 보유분도 67.32%(상반기말 기준)에 이른다.

아울러 삼성에버랜드 기존 주주 중에서도 이번 사업양수에 반대할 경우 주식매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삼성에버랜드 기존 주주의 주식매수 청구규모가 2500억원을 웃돌 경우 삼성에버랜드가 이번 패션사업 양수도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삼성에버랜드 주주 중 삼성그룹 측이 아닌 주요주주로는 KCC(17.00%)가 있다.

◇제일모직, 이번엔 사명 바꿀까?

한편 제일모직이 소재부문을 키우면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사명변경도 이번에는 이뤄질 가능성이 보다 높은 상황이다. 제일모직은 케미칼과 전자재료의 사업비중이 높아지면서 사명을 소재와 관련된 것으로 바꿔야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고, 회사 내부에서 이를 검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삼성그룹의 모태나 다름없는 '제일모직'을 버릴 수 없다는 의견이 더 강했다. 때문에 패션과 관련사업 비중이 30%로 축소된 이후에도 제일모직이라는 사명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패션사업을 아예 떼어내기 때문이다. 제일모직이라는 이름의 상징성도 중요하지만, 회사에서 영위하지도 않는 사업과 관련된 사명을 유지하는 것도 정상적인 일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제일모직 관계자는 "지금은 사업을 양도하겠다는 결정만 나온 것"이라며 "회사이름 변경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아직 미정"이라고 밝혔다.


jinebit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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