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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을 '건강한 농부'로...서울영농학교 1회 졸업생 배출

(서울=뉴스1) 장은지 기자 | 2012-10-31 08:12 송고 | 2012-10-31 08:32 최종수정


31일 시립양평쉼터에서 열린 제1회 서울영농학교 졸업식 © News1

"사랑도 첫사랑이 오래 기억에 남듯 장화를 신고 밭에 섰던 현장실습 첫날을 잊을 수가 없다."

졸업생 대표 김 모(68)씨는 "첫 감자를 수확할 때는 꼭 자식이 태어나는 것 같았다"며 졸업 소감을 밝혔다.

서울시가 노숙인과 쪽방취약주민의 자립을 위해 전액시비로 운영해온 '서울영농학교' 제1회 졸업식이 31일 오전 11시 서울시립양평쉼터에서 열렸다.

서울영농학교는 영농이론과 실습을 교육해 졸업 후 귀농하거나 영농관련 취업을 할 수 있게 지원한다.
서울영농학교는 면접에 합격한 40명이 4월 입학해 7개월 과정을 모두 마친 1기 졸업생 20명을 배출하게 됐다. 이중 4명은 실제 귀농절차를 밟고 있다.

1명은 자력으로 귀농의사를 밝혔고, 3명은 서울시로부터 농지와 폐농가를 지원받아 농사를 지을 예정이다. 이들은 각각 경북 예천과 강원도 홍천, 화천으로 귀농한다. 강원도 홍천으로 가는 최 모(55)씨는 아로니아 농장을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씨는 교육이 없는 날 양평 아로니아 농장에 취업해 일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작업반장으로 일했다. 이후 더욱 자신감이 붙어 스스로 아로니아 농장을 꾸리고 싶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8명은 양평 쉼터에서 영농자활단으로 일할 예정이다. 쉼터에서 숙식을 제공하면서 주변농지에서 작물을 재배한다. 학교는 판매수익금을 모아 자립을 위한 종잣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인근에 수확이 가능한 배밭을 확보했다. 배나무 62그루정도가 있고, 1년에 1000만 원 정도 수익금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담당자는 밝혔다. 향후 영농조합을 만들어 사회적기업으로 키울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1명은 양평 자연찬 농장으로, 3명은 참살이 영농조합에 취업했다. 남은 5명도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시가 도울 예정이다.

졸업생 이 모(60)씨는 경북 예천으로 귀농한다. 공무원이었지만 전재산을 잃고 6년 전 노숙인이 된 이씨는 영등포 보현의 집에 머물다 영농학교 모집공고를 본 시설 선생님의 추천으로 이곳에 왔다. 영등포구청에서 연탄배달을 하던 이씨는 영농학교에 가면 취업을 알선해준다고 해서 입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더울 때는 힘들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졸업하면서 부지 100평을 무료 임대받았다. 내려가면 농한기니까 염소랑 닭을 키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영농학교 커피농장 체험학습 © News1


◇ "태어나서 처음 시를 써봤어요... " 영농이론과 실습 뿐 아니라 인문학 강의도 진행

서울영농학교는 서울농업기술센터와 양평농업기술센터 등에서 전문강사 34명을 초빙해 영농이론과 실습 과정을 교육했다. 인문학강의와 정보화교육도 실시했다.

졸업식에서 우수상을 받은 윤 모(60)씨는 인문학 강의를 들으며 태어나서 처음 시를 써봤다며 멋쩍게 웃었다. 윤씨는 우수상과 함께 농협 10만원 상품권도 받았다. 윤씨를 이곳으로 소개한 '길가온 혜명'의 배명희 원장은 혜명 출신 윤씨와 김 모(55)씨를 축하하기 위해 졸업식에 참석했다. 배 원장은 이들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감자·고구마·옥수수·들깨·아로니아·호박·땅콩 등을 실습 재배했으며, 재배한 농작물은 농협과 시장에 판매했다. 약 670만원의 판매 수익금은 실습참여도에 따라 각자에게 차등 배분된다. 1인당 약 30만원을 받을 예정이다.

영농학교의 김동성 팀장은 "출석과 실습성적 등을 개인별로 다 평가해서 성적을 매겼다. 귀농의지도 많이 반영했다"며 "우수하게 졸업하신 분들에게는 지원이 더 많이 돌아간다. 그래야 자활이 더 효과적일 거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울영농학교 재배실습 © News1


◇ 땀 흘려 일하고 누리는 수확의 기쁨... 마음을 '힐링'하는 게 가장 큰 목표

서울시 자활시설팀장 김건태씨는 "서울영농학교의 애초 목적은 노숙인들의 마음을 정화하는 힐링" 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농작물을 재배하며 자존감을 회복하고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기른다면 자활에 큰 도움이 될 것" 이라고 전했다.

시는 서울영농학교 2기 입학생을 내년 2월에 모집해 3월부터 교육할 계획이다.

담당자는 "20명 모두가 취업을 하거나 귀농을 하지는 못했지만, 올해 첫 사업이기 때문에 부족한 점은 보완해서 2기는 더 좋은 결과를 내놓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이 특히 신경 쓰는 사업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생명의전화 염원숙 원장도 "서울시가 모든걸 다 해줄 수는 없다. 시설의 역할도 중요하고, 후원도 아주 중요하다"며 "내년에는 자활의지가 강한 분들이 더욱 많이 참여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사단법인 서울노숙인복지시설협회 서정화 회장은 "긍정적으로 봐 달라" 면서 "단계별로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가는 노숙인도 많다. 본인의 의지뿐 아니라 시와 시설의 지원이 아주 중요하다"고 전했다.

김경호 서울시 복지건강실장은 이날 축사에서 "어느새 졸업을 하고 새 삶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뿌듯하다"면서 "1기 졸업생들이 2기 교육생을 위해 강의나 조언을 해주실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하길 바란다" 고 말했다.


seei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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