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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아이디어 문화공간 4년만에 주차장 전락 위기

스케이트보드 문화 발상지 '컬트' 폐쇄에 강력 반발

(서울=뉴스1) 배상은 인턴기자 | 2011-12-11 06:00 송고 | 2012-01-26 21:36 최종수정
'프리컬트' 포스터 /사진제공='프리컬트'운동 추진본부 © News1


서울시가 시민의 우수 정책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하며 만든 인기 문화공간을 4년 만에 부수고 관광버스 주차장으로 바꾸려해 물의를 빚고 있다. 


문제의 장소는 국내 스케이트보드 문화의 발상지라는 의미도 품고 있어 당국의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란 지적도 나온다. 


최근 중구청 홈페이지에는 중구 을지로 5가 훈련원공원에 관광버스용 주차장을 건립하려는 시 계획을 반대하는 민원글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자신을 스케이터라고 밝히는 이들은 "엑스게임장인 일명 '컬트'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사실이냐"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이  흥분하는 이유는 훈련원공원 내에 위치한 엑스트림 스포츠 게임장인 일명 ‘컬트’를 관광버스용 주차장으로 바꾸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케이터 '강습소'이자 엑스 스포츠 '문화공간'


1990년대 말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위해 훈련원공원을 찾은 이들은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스케이트보드 묘기를 부릴 수 있는 '기물'을 하나둘씩 공원에 채워나가면서 ‘컬트’를 만들었다. 


솜씨 좋은 스케이터들이 모이고 일반인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 '컬트'를 찾는 이들이 늘면서 당시 국내에도 영화에서나 보던 스케이트보드 문화가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서울시가 시민 정책제안 사이트인 '천만상상 오아시스'에 "이곳을 익스트림 스포츠 게임장으로 만들자"는 시민 제안을 받아들여 대형 기물들을 설치하고 시설을 정비해 현재의 '컬트'를 완성했다. 


이후 ‘컬트’는 프로스케이터들의 ‘강습소’이자 스케이트보드 관련 행사와 공연이 펼쳐지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요즘 같은 추운 날씨에도 주말 평균 30~40명의 스케이터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주 시즌인 여름철에는 주말 평균 100명이 함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장관을 이룬다. 


국내 스케이트보드 인구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네이버에 등록된 동호회 카페만 300여개에 이를 정도로 인기다. 규모가 큰 곳은 회원수가 2만명을 육박한다. 


동호회 회원들은 전문적인 강습을 받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어 대부분 ‘컬트’에서 스케이트보드를 처음 접하고 있다. 


'컬트'를 찾기 위해 평택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왔다는 이경민(18)군은 “스케이트보드를 배우고 싶은데 마땅한 곳이 없다”며 “컬트에서는 프로선수들이 타는 것도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어 매주 (컬트에) 온다”고 말했다.

◇ "외국인 관광객 주차장 부족" '컬트' 사라질 위기


하지만 '컬트'는 동대문 쇼핑몰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차시설이 열악해 접근에 불편을 겪고 있다는 이유로 조만간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김수안 중구의회 의장과  최강선(민주당·중구1) 시의원, 김방진 동대문패션관광특구협의회 회장 등이 9월20일 이 같은 이유로 훈련원공원에 관광버스 주차장을 건설할 것을 요청하는 청원을 시의회에 접수했다.


지대식 동대문패션관광특구협의회 사무국장은 뉴스1과의 통화에서 “해마다 동대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300만명에 이르며 연간 수출액은 30억 달러가 넘는데 관광버스 주차장이 없다"며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건설중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도 관광버스 주차장은 소규모로 계획돼 있어 훈련원공원 내 주차장 건립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훈련원 공원내 주차장 설립 청원은 이달 6일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에 정식 안건으로 올라 19일 본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다.



 


2010년 6월 컬트에서 개최된 '제3 회 로닌 스케이트보드 대회''/사진제공=로닌 © News1

 

◇ 국내 스케이트보드 문화의 허브 '컬트'

이에 맞서 주차장 건립을 막기 위한 '프리컬트' 운동도 시작됐다. 

프로스케이터인 고성일(30), 양동철(30), 신정혁(29)씨는 최근 중구청과 서울시에 정식으로 민원을 제기하고 조만간 전국 각지의 스케이터들을 모아 컬트에서 항의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프리컬트’ 운동에는 중·고등학생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스케이터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1997년도부터 퇴근 후 저녁시간과 주말마다 컬트를 찾고 있다는 조우진(31)씨는 “컬트가 없어진다면 스케이트보드를 타기위해 수유리 집에서 의정부까지 가야한다”며 ‘프리컬트’운동에 적극 참여할 뜻을 밝혔다.

고성일씨는 “컬트는 그저 ‘레저시설’이 아니라 한국에서 스케이트보드 문화가 시작된 ‘발상지’다”며 “주차장건립계획은 스케이트보드를 ‘문화’로 인식하지 않는 이들의 편협한 인식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반발에 지대식 사무국장은 “취미활동 보다는 주차장을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는게 값진 일이 아니겠냐”고 답했다. 

한국에서 매달 스케이트보드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 필립 송(26·캐나다) 케이덴스 대표는 "한국은 일본, 중국에 비해서도 유난히 스케이트보드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 서울시 운영 엑스게임장 '폐허'된 채 방치

 

서울시는 사용하지 못할 엑스게임장을 만든 뒤 부실 관리로 폐허로 만들고선 정작 잘 이용되고 있는 곳을 주차장으로 만들려 하는데도 나몰라라 하고 있다는 비난도 나온다. 


현재 서울시는 한강시민공원 가운데 난지, 뚝섬, 광나루, 이촌지구 총 4곳에 엑스게임장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담당하는 부서가 없어 시설은 노후되거나 파손된 채 방치되고 있다.


실제 2001년 건설된 한강시민공원 이촌 지구 엑스게임장의 경우 10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보수공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다른 3곳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강시민공원을 관리하는 한강사업본부 녹지과 관계자는 “얼마 전 이촌지구를 가봤더니 부서지거나 낡은 곳이 상당히 많아 보수공사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철거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키 소속 프로스케이터 양동철씨는 “한강공원 내 엑스게임장들은 관리도 문제지만 건설 당시에도 전문가의 참여 없이 공사가 진행돼 설계 자체에 문제가 많다”며 “엉망으로 위험하게 만들어놓고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는 핑계를 대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2011 SUMMER X-GAME /사진=ESPN © News1

◇ 스케이트보드 발원지 미국에서는...

1940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만들어져 타기 시작한 스케이트보드는 선진국 젊은층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2012 런던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채택됐다. 


1995년부터 미국의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이 개최하고 있는 스케이트보드 대회인 ‘X-GAME'은 미국 전역은 물론 전세계로 생중계된다. 우승자에게는 1억원 상당의 상금과 함께 엄청난 인기와 명예가 뒤따른다. 


대회 원년 금메달을 시작으로 2002년까지 8회 연속 우승을 기록한 전설의 '스케이터 토니 호크'(Tony hawk)는 각종 방송과 영화, 광고에 출연한 것은 물론 자신의 이름을 딴 게임 소프트웨어가 출시됐을 정도다.


미국에서 스케이트보드는 ‘인기 스포츠’이자 하나의 거대 ‘산업’이다. 최근에는 자폐증 치료에까지 스케이트보드가 활용되고 있다. 




 


baeba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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