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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 30년 상전벽해 서울 강남, 한국 근대화 표상"

교보생명 주최 '동감콘서트'서… '우리의 삶이 역사' 주제
"너무 짧은 기간 자본주의 형성… 부동산·재벌 문제 생겨"
해결은 복지 확대… 타협·협의·조정 등 민주주의 발전 필요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2014-06-22 01:34 송고
20일 오후 서울시 중구 정동 덕수궁 함녕전 앞에서 열린 교보생명 주최 '동감콘서트'에서 황석영 작가가 발언을 하고 있다.(교보생명 제공) © News1


"역사는 거창한 게 아닙니다. 우리들의 일상과 오늘이 쌓여서 역사가 됩니다. 그래서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상식의 축적입니다."
역사를 논하는 노(老) 소설가의 말에는 생기가 넘쳤다. 한 번 마이크를 잡으면 5분을 넘기기 일쑤였다. 긴 발언에도 청중들의 집중력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쉬운 말을 들을 때는 탄식했고 희망적인 부분에서는 박수로 화답했다.

황석영(71) 작가는 20일 저녁 덕수궁 함녕전 앞마당에서 교보생명 주최로 열린 '동감콘서트'에서 '우리의 삶이 역사다'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함녕전은 한국 근현대사의 잔영(殘影)이 있는 곳이다. 조선 말기에 고종이 거처했고 1919년 이 곳에서 승하했다.

동감콘서트는 명사가 참여해 문학과 역사, 철학 등 인문학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형식으로 시민들의 호응을 얻어왔다. 오후 내내 소나기가 내리는 등 궂은 날씨였지만 250여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월드뮤직 그룹 '리딩톤'의 퓨전국악 공연도 함께 펼쳐졌다.
이날 콘서트에서는 황 작가의 소설 '강남몽(2010)'을 중심으로 역사의 가치와 교훈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강남몽'은 1995년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를 시작으로 한국의 자본주의 형성사와 오점 투성이의 근현대사, 개발시대의 욕망과 치부를 담아낸 소설이다.

20일 오후 서울시 중구 정동 덕수궁 함녕전 앞에서 열린 교보생명 주최 '동감콘서트'에서 월드뮤직 그룹 '리딩톤'이 관객들에게 퓨전국악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교보생명 제공) © News1


황 작가에 의하면 '강남 개발'이야말로 한국 근대화 역사의 표상이다. 1963년 경기도의 작은 논이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시작된 강남의 개발은 90년대 초까지 30여 년 간 이어지며 해방 이후 한국 자본주의의 형성과 궤를 같이 했다.

"서양은 르네상스 이후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해가는 과정이 300년 걸렸습니다. 일본도 메이지 유신 이후 100년 걸렸죠. 한국은 30년 만에 해치웠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조급해하며 앞만 보고 거기로만 달려갔어요. 그 모습이 현재 한국 자본주의의 쇼윈도(show window)입니다."

그는 한국의 경우 너무 짧은 기간 동안 자본주의가 형성됐기 때문에 두 가지 문제가 생겨났다고 지적했다. 부동산과 재벌이다.

"1960~70년까지 10년 동안 강남의 땅값은 180배가 올랐습니다. 당대 은행이자율의 100배에 해당하지요. 혜택을 본 사람은 개발 조건을 알고 있던 정부와 관료, 그들의 친인척 등 주변부 뿐입니다. 서민들은 열심히 일한 월급을 저축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집 없는 설움을 겪게 됐고 엄청난 부의 격차가 생겨났습니다."

"당시 은행들은 국가에서 관리됐습니다. 국가는 자본을 집중해서 발전할 필요가 있었으니 특혜 대출을 해주며 재벌을 형성했지요. 우리의 근대화는 그 토대 위에서 이뤄졌습니다. 국가는 재벌을 밀어주고 불로소득을 얻게 해주면서 키워놓았습니다."

20일 오후 서울시 중구 정동 덕수궁 함녕전 앞에서 열린 교보생명 주최 '동감콘서트'에서 황석영 작가(가운데)와 최태성 대광고 교사(오른쪽), 최원정 KBS 아나운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교보생명 제공) © News1


황 작가는 국가와 재벌은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희생을 했던 서민들에게 빚이 있다고 주장했다. 빚을 갚을 수 있는 방안은 '복지'다. 이들이 애초에 '선 발전 후 분배'를 주장했던 만큼 복지에 의한 분배가 이뤄져야 하지만, 그 내용이 담긴 경제민주화는 한 세대가 지나갔는데도 이뤄지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복지를 이루기 위해 민주주의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족한 사회 안전망 등을 민주주의 절차에 의해 이뤄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근대화 과정에서 자본주의가 생겨났지만, 사실 그 근대화의 이념적 근거는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의 정신은 공공성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이고 노동시간과 산업재해율도 세계 1위이지요. 이는 공공성을 상실해가는 과정입니다. 한국의 근대는 민주주의를 억압하며 발전해왔지만 이제는 문제점을 타협하고 협의하며 조정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정치고 그게 민주주의의 발전사입니다."

황 작가가 역사를 강조한 이유는 그래서다. 역사는 스스로 진보하는 게 아니라 구성원의 노력으로 나아간다는 점은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과 닿아있다.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기록이고 경험의 모음이기 때문이다. 그 경험들로부터 삶에 대한 반성을 이끌어내고 교훈을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역사는 보통 사람들이 '그 당시'를 느끼고 분노한 상식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그 당시'는 근대이지요. 우리는 근대를 뛰어넘어야 할 시민(citizen)입니다. 여러분은 가냘프고 파편화된 개인이 아닙니다. 주위의 이웃을 발견하세요. 그리고 자신의 일상을 개선하는 것에 이웃들과 책임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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