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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도 삭제대상? '잊혀질 권리' 섣부른 법제화 우려

현행법으로 명예훼손 등 관련글 차단가능..."오남용 막을 수 없어"

(서울=뉴스1) 지봉철 기자 | 2014-06-17 06:35 송고

국내에서 인터넷상에 노출된 개인 신상정보나 관련 콘텐츠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잊혀질 권리' 논의가 수면위로 부상하면서 정부의 섣부른 법제화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을 악용할 경우, 공익적 목적으로 보도된 과거 신문기사까지 모두 삭제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잊혀질 권리'가 주목받게 된 계기는 지난달 13일 유럽사법재판소(ECJ)에서 내려진 판결 때문이다. ECJ는 2009년 스페인 변호사가 구글 검색으로 드러나는 자신의 빚문제와 재산 강제매각에 대한 신문기사 삭제 소송에 대해 "삭제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 News1
ECJ에서 이같은 판결을 내리자, 방송통신위원회는 16일 '잊혀질 권리' 법제화 방안을 논의하는 컨퍼런스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참석한 대부분의 토론자들은 섣부른 법제화를 우려했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으로도 사생활 침해가 판단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삭제할 수 있도록 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온라인에서 특정인의 사생활을 집중적으로 파헤쳐 괴롭히는 이른바 '신상털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들은 명예훼손과 관련된 글의 삭제 요청이 있으면 임시차단하고, 이후 30일간 이의신청이 없으면 삭제하고 있다.

정찬모 인하대 교수는 "잊힐 권리가 실제로는 기술적, 행정적으로 운용이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국내 도입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현행 정보통신망법상 사생활침해 정보에 대한 삭제요청 운용을 재검검하는 수준에서 대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잊혀질 권리를 남용하면 알권리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를 넘어서 인터넷 산업 자체를 쪼그라뜨리게 만들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교수는 "잊혀질 권리는 프라이버시와 전혀 무관하게 단순히 자신이 싫어하는 과거를 타인의 기억으로부터 삭제할 수 있는 권리로 확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자신의 과거가 기록된 신문기사가 삭제대상이 될 여지가 크다. 살인·성폭행 등 강력사건 범죄자나 정치인이 자신의 전과 기록이나 이력을 감추기 위해 포털에 게재된 글뿐 아니라 신문기사까지 삭제를 요청할 권리를 가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포털 임시조치제도에 의해 삭제된 게시물이 2008년에 비해 지난 2012년에 59% 증가했다"며 "감시가 필요한 정치인과 대기업이 가장 큰 수혜자"라고 밝힌 바 있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만큼) 잊혀질 권리를 우리 법에 규정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들을 고려해봐야 한다"며 "일반인의 기억할 권리, 기억될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포털업계 한 관계자는 "한쪽에서는 사생활 침해로 지워달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공익적 이유로 남겨야 한다고 하면 포털 입장에선 난감할 수밖에 없다"며 "잊혀질 권리도 중요하지만 알권리, 표현의 자유 등의 가치도 팽팽히 맞서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jan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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