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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극단적 무능·부실이 부른 대참사…'人災'

총체적 부실…무리한 개조, 명예 버린 선장, 안전 관리 허술
구조, 탑승 인원 '오락가락' 시신도 뒤바뀌어...실종자 가족 분노 폭발

(진도=뉴스1) 조재현 기자 | 2014-04-25 22:29 송고 | 2014-05-07 22:24 최종수정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세월호 실종자 무사쉬환을 위한 노란리본 달기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시작 된 가운데 25일 대구시 중구 동성로에도 노란리본에 적힌 글들이 줄지어 걸려있다. 2014.4.25/뉴스1 © News1 정훈진 기자


승객 476명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다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를 둘러싼 진실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최악의 인재(人災)라는 오명을 씻을 수 없게 됐다.
끝까지 배를 지켜야 할 선장은 가장 먼저 배를 탈출해 '명예'도 함께 바다에 버렸다. 해경과 소방 등 구조 당국의 초동 대응도 허술하기 짝이 없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허비했다.

사고를 수습해야 할 정부는 구조자 수를 잘못 발표하고 탑승객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이들이 자신의 임무를 저버리거나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사망자 수는 늘어만 갔다.

◇ 선박 개조 '무리', 화물은 '과적', 운항은 '초보'
세월호는 1994년 6월 5997톤으로 진수돼 일본에서 운항하다 589톤에 해당하는 시설물이 증설됐다. 이후 세월호는 한국으로 인도되던 2012년 또 한번 5층을 증축, 239톤 분량의 객실을 추가로 더했다.

그러면서 배의 무게중심은 11.27m에서 11.78m로 51㎝ 높아졌다. 순수 여객 탑승인원도 804명에서 921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세월호는 수직 증축을 하면서 화물을 많이 실을 수 있게 됨에 따라 배의 무게중심은 더 많이 올라가는 위험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를 운항하는 청해진해운에 따르면 세월호는 사고 당시 승용차 124대, 1톤 화물차량 22대, 2.5톤 이상 화물차량 34대 등 차량 180대와 화물 1157톤 등 총 3608톤의 화물과 차량이 적재됐다. 승객의 체중은 제외한 무게였다.

그런데 2.5톤 이상 화물차량 34대 중 2.5톤 차량은 1대뿐이었고 4.5톤 이상 중형 화물차량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세월호에는 사고당시 무게 50톤 이상의 대형 트레일러 3대가 실렸던 것으로도 확인됐다. 해당 트레일러의 후미에는 무게 20톤의 대형 철제 탱크도 달려있었다.

세월호의 적재한도는 여객 921명, 차량 150대 20피트 컨테이너 152개다. 차량으로만 따지면 30대가 초과 적재된 것이다. 탑승객이 배 용량보다 적었다지만 차량 무게를 감안하면 적재용량을 넘었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선장 이준석(69·구속)씨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조류가 빠른 것으로 알려진 맹골수도에서 3등 항행사 박모(25·여)씨에 배를 맡겼다. 박씨가 직접 배를 몰아 맹골수도를 통과한 경험은 없었다.

◇ '이상 징후' 선박, 안전관리는 잘 됐나?

선박 자체의 결함가능성 등이 제기되는 가운데 배를 직접 관리하는 선원들의 무책임한 안전관리도 참사를 키웠다.

최대 921명을 태울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의 배를 몰면서도 이들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비상 시 기본 매뉴얼도 잘 모르고 있었다.

청해진해운은 지난 한해동안 승무원 안전교육비로 54만1000원을 쓰는데 그쳤다.

직원수(118명)를 감안한다면 1인당 4600원 꼴이다. 그런데 사측이 지난해 쓴 직원 통신비는 무려 1100만원이었다.

이에 "안전교육을 충분히 시켰다"는 청해진해운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을 수밖에 없다.

또한 선박 검사와 인증을 맡고 있는 한국선급의 검사도 허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의 여객실 증축공사가 준공되기 13일 전인 지난해 1월24일 세월호에 대한 '복원성' 검사를 실시했다.

복원성은 배가 급선회하거나 파도·바람 등으로 기울어졌을 때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기능이다.

한국선급은 여객실 증축으로 배 자체 무게가 늘어난 세월호에 대해 화물 적재량과 평형수를 조정·운항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복원성 검사를 통과시켰다.

세월호의 무게중심이 올라감에 따라 화물과 여객의 무게를 절반 이하로 줄이고, 복원력에 직접적 역할을 하는 평형수(Balance Water)를 5배 이상 유지해야한다는 조건이었다.

이에 따르면 세월호 화물량은 구조변경 전 2437톤에서 987톤으로 1450톤을 줄여야 했으나 사고 당시 세월호에는 2배가 넘는 총 3608톤의 화물과 차량이 적재됐다.

◇실종자, 탑승자 파악도 안돼…시신도 뒤바뀌어

사고 당일 정부는 세월호의 구조 인원과 탑승 인원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며 오락가락했다.

사고 이후 일원화된 컨트롤타워가 작동되지 않은 탓이었다. 사고 발생 3일째까지 정부는 정확한 인원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사고 첫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구조된 인원을 368명으로 발표하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최초 발표된 탑승객 인원도 477명이었다.

그랬던 정부는 참사 사흘째인 18일에야 전체 승선자 인원을 476명, 구조자는 174명이라고 정정했다.

정부의 어설픈 대응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시신 확인 절차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이미 자녀를 잃은 부모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지난 21일 오전 1시15분쯤 안산 제일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져 A(19)군이라고 알려진 시신은 DNA검사 결과 다른 사람으로 확인됐다.

이에 앞선 17일에는 박모양으로 알려진 시신이 이모양으로 확인돼 목포에서 안산으로 옮겨진 시신이 다시 목포로 되돌아가는 일이 벌어졌다.

◇'1분1초가 바쁜데'… 수색작업은 대체 어떻게 진행?

정부의 더딘 수색에 지친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 발생 아흐레째에 접어든 24일 결국 폭발했다.

실종자 가족 50여명은 범정부사고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을 비롯 김석균 해양경찰청 청장, 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을 상대로 고성을 퍼부으며 "빨리 구조작업에 총력을 다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사고 해역의 유속이 가장 느려지는 소조기의 마지막날이기도 했던 이날 대책본부는 민·관·군 합동 구조팀 700여명을 투입해 3·4층 선수와 선미의 다인실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인다고 밝혔었다.

수백범위에는 4층 다인실에 이어 침대칸 객실도 포함됐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시신을 수습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은 결코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가족들은 이 장관 등을 상대로 '현재 구조 작업에 몇명이 투입되고 있느냐'고 물었고 직접 시신 수습이 가능한 잠수사는 10여명이라는 어이없는 답변을 들었다.

결국 가족들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이는 정부가 자초한 일이었다. 세월호의 수색·구조 작업 과정에서 잦은 번복과 정정 발표를 통해 실종자 가족들의 공분을 샀다.

중대본은 지난 18일 오전 해경과 해군 등 구조·수색팀이 세월호 식당칸 진입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가 오후 들어 번복하기도 했다.


cho8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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