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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의 영화읽기]페이스 오브 러브-사랑의 얼굴

(울산=뉴스1) 이상길 기자 | 2014-04-18 23:59 송고


아무래도 노년의 사랑이 소싯적 사랑보다는 좀 더 우아하고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데는 누구든 쉽게 동의할 것 같다.
사랑도 삶의 경험이고 나이가 들면서 제법 많은 사랑과 이별을 겪다 보면 소위 '사랑의 기술'이란 것도 늘기 마련이다.

하지만 소싯적 사랑과 비교할 때 노년의 사랑은 그 온도까지 다를까. 다시 말해 노년의 사랑은 좀 덜 뜨거울까.

<페이스 오브 러브>에서 노년의 톰(애드 해리스)과 니키(아네트 베닝)의 사랑을 보면 결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니키를 보고 첫눈에 반한 톰은 다른 운명적인 사랑을 찾아 오래전 자신을 떠난 전 부인(에이미 브렌먼)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을 보면 숨을 못 쉬겠어. 너무 좋아서 아파. 하지만 기분 좋은 아픔이야."


영화 속에서 톰의 대사는 조금 다른 의미가 담겨져 있지만 어쨌든 사랑은 그의 말처럼 '기분 좋은 아픔'이다.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사랑은 언제나 지상 최대의 행복을 선사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엔 아플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랑은 '이어달리기'다. 삶 전체를 통틀어 사랑만큼 큰 행복을 주는 게 없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인간은 누구든 사랑의 노예가 된다.

때문에 하나의 사랑이 지나가면 오래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또 다른 사랑이 시작되곤 한다. 사랑도 그렇게 꽃처럼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하지만 <페이스 오브 러브>에서 니키에게 전남편 가렛(애드 해리스)과의 사랑은 그녀에게 너무 강렬한 행복을 주고 말았다.

때문에 니키는 5년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가렛을 아직도 그리워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니키는 지금 사방에서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가렛의 흔적들 때문에 힘들다.

그러던 어느 날 니키는 가렛과 똑같이 생긴 톰을 가렛과의 추억이 가득한 미술관에서 발견하게 된다.

분명 가렛은 죽었는데도 그와 일란성 쌍둥이 같은 톰의 모습에 니키는 어쩔 수 없이 끌리게 되고 급기야 둘은 연인 사이가 된다.

하지만 가렛에 대한 사랑을 지울 수 없었던 니키가 톰을 죽은 가렛과 점점 동일시하면서 둘 사이에는 갈등이 빚어진다.


5년 전 죽은 가렛과 똑같이 생긴 톰의 존재로 인해 어쩌면 관객들은 <페이스 오브 러브>에서 스릴러나 서스펜스를 원할 지도 모른다.

실제로 <페이스 오브 러브>는 스릴러와 서스펜스 영화의 선구자인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하지만 <페이스 오브 러브>는 톰의 존재와 관련해 현기증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속성에 대한 이야기다. 또 그것은 사랑을 할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사랑하는가에 대한 어려운 질문 같은 것이다.

허나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왜' 사랑을 하는 가부터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사실 첫사랑이 특별한 건 그 사랑이 외로움에서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사람의 일생은 '사랑을 알기 전'과 '알고 난 후'로 나눌 수 있다.

몰랐을 때의 사랑이 처음이라서 신비롭고 강렬하며 애절하다면 알았을 때의 사랑은 이미 외로움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첫사랑은 우연히 다가오지만 그 이후의 사랑은 외로움을 못 이겨 스스로 찾는 경우가 많다.

<페이스 오브 러브>에서 니키의 실수 아닌 실수는 자기 인생에 있어 사랑은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물론 사랑은 하나일 때 더욱 빛이 난다. 허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약해빠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가렛이 떠나고 난 후 가렛에 대한 니키의 그리움도 점점 외로움으로 변해 갔고, 그런 탓에 가렛과 닮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니키는 톰에게 쉽게 빠져들고 만다.

허나 그건 톰에게는 크나큰 상처가 된다. 때문에 그 지점에서 관객들은 자연스레 니키가 과연 톰을 진심으로 사랑했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톰도 눈물을 흘리며 니키에게 그렇게 묻는다.


어쩌면 가렛과 함께 할 때도 니키가 진정 사랑한 건 그로 인해 자신에게 주어졌던 '행복'이라는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니키는 톰을 이용해 과거의 그 행복을 재현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다시 말해 시간을 되돌리려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듯 사랑도 흐르기 마련이다. 결국 니키에게 있어 톰과의 만남은 그러한 깨달음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물론 톰은 달랐다. 그는 숨쉬기 힘들 정도로 니키를 사랑했다. 그랬기 때문에 <페이스 오브 러브>는 아름다운 반전과 함께 순수한 사랑이야기로 끝을 맺을 수 있게 된다.

보는 내내 니키역을 맡은 '아네트 베닝'의 목주름살이 유난히 눈에 띄었지만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처럼 세월에 주름진 노년의 사랑이지만 사랑은 여전히 아름답더라.

모든 '사랑의 얼굴'은 같더라.

16일 개봉. 러닝타임 92분.


lucas02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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