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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원 황사손 "왕실·황실 가치, 이 시대 콘텐츠로 복원돼야" <2>

"문화융성, 가치에 대한 부분 들여다 봐야"
"왕실·황실, 개인적 이용은 매국 행위"

(서울=뉴스1) 염지은 기자 | 2014-02-01 20:59 송고 | 2014-02-04 02:13 최종수정
이원(李源) 황사손(皇嗣孫)이 서울 종로구 이화회관내 황실문화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민경석 기자


조선 왕조가 막을 내린 이후 고종 황제의 후손들은 궁핍한 삶을 이어 가야만 했다. 황실 사람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거나 숨어 살았고 생존을 위해 시장에서 국수를 팔고 미군부대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승만 정부는 영친왕과 부인 이방자 여사의 귀국을 막는 등 황실의 후손들을 철저히 배제했고 권력자들은 황실 재산을 나눠 가졌다.
황사손과의 대화는 황실 후손들의 안타까운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현재 의친왕의 12남 9녀 중 9,10,11,12번째 아들 4명이, 딸은 7명이 생존해 있다.)

- 황실 재산은 다 몰수됐나. 권력을 가진 개인이 뺏기도 했다는 데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은 없나.

▶ 문화재청이 문화재관리국이 되기 전에 역사를 좀 되돌아 보면 조선왕조에서 대한제국으로 13년간 지속하다 결국은 일제에 강점당하면서 조선총독부에서 이왕직이라는 기관을 만든다. 대한제국을 강점해서 통치하는 기구로서 일본 일왕의 직제기구인 조선총독부 아래 기관중 황실의 재산을 다 몰수해서 관리한 기관이 이왕직이다.
왜 이왕직이냐 하면 청일전쟁이후 조선왕조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원구단에서 하늘에 제사도 지내고 하니 일제가 너희는 황제국이 아니다, 하늘아래 황제는 일본만 있을 뿐이다, 너희는 왕가로써 천왕밑에 이씨왕조다하며 격하를 시킨 것이다. 오얏 이(李)자를 쓴 재산을 관리하는 부서다해서 이왕직이라고 했다. 광복이 되면서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 일제가 강점했던 황실의 자산을 그대로 다시 문화재관리국이라고 하는 형태로 만들어 국가가 관리하게 된다.

그 얘기를 하면 얽히고 섥힌 부분이 많다. 하고 싶지 않다. 아직도 관련된 분들이 있다. 일본이 고종황제의 내탕금까지도 빼앗아 갔다.

고종황제가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하신 일이 많다. 자본을 더 많이 확산시켜 나라를 다시 찾겠다 해서 황제 내탕금까지 내어 학교를 설립하셨다. 내탕금은 황제만이 운영할 수 있는 왕실의 재산이다. 그걸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학교를 설립했다. 보성전문학교, 숙명학원, 양정 등 근대에서 만들었던 학교 대부분은 영친왕의 어머니인 엄귀비를 통해 나가기도 하고 순종황후를 통해서도 나가기도 한 내탕금으로 설립됐다. 대한제국은 정부재정과 황실재정을 분리해 관리했다. 황실재정이 바로 내탕금이다.

또 지금의 우리은행 전신인 대한천일은행이 황실내탕금으로 설립됐다. 우리은행본점 지하 1층에 가면 은행사 박물관이 있는데 초대 은행장, 2대 은행장이 영친왕이시다. 그런 활동들을 꾸준히 했다. 고종황제는 아들 3분이 있다. 순종황제, 영친왕, 의친왕이다. 순종황제는 독살됐고 영친왕은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서 강제로 일왕가의 사촌인 나시모토 가문, 이방자 여사와 강제 결혼했다. 의친왕은 한국에 있으면서 독립운동을 위해 고종황제의 내탕금을 받아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다 안동에서 순사에 잡혀 사동궁에 감금됐다. 그런 의친왕가의 재산들이 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자금으로 쓰라고 주셨던 고종황제의 내탕금은 일부분은 나라에 기부되기도 하고 일부분은 뺏기기도 했다. 100% 다 의친왕때 뺏겼다.

정권이 생기면서 가져가기도 했고 당시 권력을 가진 분들이 변호사를 통해 강압적으로 뺏기도 했다. 그걸 다 얘기하자면 너무 많다. 그런 분들이 아직도 힘을 갖고 있어 말을 못한다. 오산땅도 의친왕 할아버지의 땅이었다. 그런데 전두환 정권때 뺏겼다. 그때 힘있는 자들에 의해 소유권이 옮겨갔다. 역추적해서 쫒아갈 수 있는 힘이 없다. 고종황제 내탕금 일부는 의친왕이 독립자금으로 쓰시기도 하고 나라에 헌사하셨다. 또 일부분은 아내나 의친왕 비, 후비나 아들에게 물려주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정권의 힘있는 자들에 의해서 여러 가지 상황으로 가기도 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이 고종을 폐위하고 순종을 등극시키는데 순종이 자식이 없어 마지막 동생인 영친왕을 황태자로 책봉한다. 이 황태자를 이토오 히로부미가 강제로 볼모로 끌고가 일왕가의 사촌인 나시모토 가문, 이방자 여사와 결혼시킨다. 영친왕 사후, 영친왕에게 의민황태자라는 시호를 올려서 의민 황태자와 의민황태자비로 부른다. 이 두분이 이승만 대통령때는 귀국을 못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찾아가 당신들은 귀국하지 마시오, 나라를 빼앗긴 황태자로서 여기서 치욕을 안고 사시오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때야 귀국시켜 창덕궁 낙선재에 살게 하는데 그때 일부분 영친왕의 재산이 돌아왔지만 그때도 권력에 의해 빼앗겼다. 일부분은 의민황태자비가 사회복지사업을 위해 많이 헌납했다. 자혜원, 명휘원이 아직 남아 있다. 천주교 단체가 운영한다.
이원(李源) 황사손(皇嗣孫)이 서울 종로구 이화회관내 황실문화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민경석 기자


-황실문화원에 대해 정부 지원은 없나.

▶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황실이나 왕실을 얘기할 수가 없다. 제가 지금 문화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왕실이나 황실 복원은 정치적인 문제다. 정치적인 것으로 번지기 시작하면 지금 정당 정치에서 기득권을 갖고 있는 정치인들이 정치로 본다. 전에 있었던 국가로 본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왕실, 황실을 정치적으로 활용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저는 정치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왕실, 황실은 중요한 전통 가치관으로서 문화로서 복원돼 그것에 대한 가치가 지금 시대에 필요한 콘텐츠로 쓰여져야 하는 것이지, 정치를 하고자 하는 가치로 활용돼서는 안된다.

대한황실문화원이 2012년 6월에 설립이 됐다. 사단법인은 비영리법인으로서 문화적인 복원이나 목적사업을 하기위한 정부의 지원형태도 있다. 문화재 환수, 문화복원, 가치관 복원,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사회봉사 등의 목적사업이다. 또 우리나라에 있었던 전통사상을 해외에 알리기 위한 보급과 파급을 위해 사단법인 단체가 설립돼 그것에 맞는 목적 사업을 하면 국가가 지원하는 형태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그때그때 프로젝트에 맞춰 아주 미약하게 나온다. 황실이라고 특별한 대우는 없다. 일반 사단법인과 같다. 또 교육을 위한 부분인데 문화해설사 양성 과정 등은 프로젝트마다 실적이 있을 때 조금씩의 지원을 받고 있다.

대한황실문화원에서 조선왕조때 대한제국 황실에 있었던 예술적 문화가치를 복원하는데에 지원받고 있는 부분은 없다. 가치에 대한 부분이다.

문화가 융성하기 위해서는 가치에 대한 부분들을 들여다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국민중에서 왕실, 황실 문화를 복원하자 했을 때 사람들이 쉽게 관심을 가질 수는 있다. 과연 무슨 가치를 복원하고 싶어할까. 왕정 시스템을 다시 복원하자는 얘기는 아닐 것이고 황제가 있는 시스템도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생각하는 부분들은 우리도 자랑할만한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국가를 하나의 인격체로 본다면 자랑할 만한 무엇인가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 문화중흥, 문화융성, 민족 등 많은 단어를 쓴다. 이중 과연 영속되는 것이 이 시대에 있나, 거꾸로 반문하고 싶다. 영속돼 오고 자랑할 만 것이 우리나라에 있는 지.

각 시대에 새롭게 대통령직 맡으면 항상 자랑스럽게 하시는 것들이 다 있다. 그런데 과연 영속되고 있는 지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70년 전에 건국된 것인가? 유구한 반만년 역사에 의해 이 나라 이 땅에 태어나 지속적으로 단군시대부터 왕조를 이어와 피의 순환이 됐다. 그걸 이어왔던 것이 조선왕조, 대한제국까지였고 일제 강점 후 상해 임시정부가 대한제국을 복원해야 한다고 시작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우리는 3.1운동정신을 계승해'라고 돼 있다. 그 가치관부터 들여다보자. 대한민국은 건국 70년이고 3.1운동정신만 계승해서 생겼나? 정치인들이 이런 얘기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조경제, 문화융성? 갑자기 뭐가 튀어나올 수 있는 건가.

제 생각에는 대한민국 건국시 일제 강점기때 빼앗겼던 근본적인 아픔, 무엇이 잘못돼 나라를 빼앗긴 것인 지, 그때 정치를 어떻게 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때 친일이 청산이 됐어야 했다. 민족적인 자긍심이 국민 안에 다 있어서 나라에 불충하고 친일하면 단죄받는 것이라는 것이 국가적 형태안에서 존재해야 한다. 친일한 사람들 다 잘먹고 잘사는데 항일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망하고 못사는 나라에서 그런 가치관을 되돌려주는 일을 국가가 해야하지 않나.

- 친일청산은 어떻게 해야하나.

▶ 그것까지 논하지는 않겠다. 그것은 국가가 해야할 역할이다. 저는 그런 사상에 대한 것들, 이 시대 가치관들을 국민이 뽑아 준 국회의원들이 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공화국이다. 일본에 빼안긴 정신문화, 거기에 관련된 문화재 이런 것들을 찾아오면서 우리의 자긍심은 무엇인지, 돌아온 조선왕실의궤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지를 전파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다. 찾아오면 뭐하나, 조선왕실의궤를 찾았다고 3년전 난리가 났었는데 지금은 고궁박물관 수장고에 들어가 복원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과연 우리 국민중 몇명이나 조선왕실의궤에 아직 관심을 갖고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왜 문화재가 중요하고 국가가 중요하고 친일은 왜 하면 안 되는 지 항일은 왜 반드시 해야 하는 지 우리 아이들은 알아야 한다. 지금 일본이 어떻게 하고 있나. 120년전과 같다. 역사속에서 배워야 한다.

올해가 다시 갑오년인데 120년 전과 똑같이 맞물려 돌아간다. 중국이 부활하고 일본과 맞물려서 열강이 힘겨루기를 한다. 일본은 원자력 등 여러가지 상황에서 다시 군국주의를 부활시키는 아베라는 인물이 위안부 강제동원도 번복해서 없다고 하고 731부대 상징인 비행기를 타고 신사참배도 자랑스럽게 하고 있다. 중국도 지지않겠다고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다. 120년전 일본은 미국과 밀약하고 대한제국을 강점할 수 있었다. 지금 똑같은 3국의 논리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력은 역사속 가장 강한 나라가 됐지만 정신은 과연 어떨까.

자긍심이 없다는 거다. 이일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거다. 내가 누굴 만나 얘기해도 앞에서는 다 호응한다. 우리나라처럼 국가라는 개념이 약한 나라는 없다고들 한다. 친일청산이 안됐다. 친일재산 환수, 거의 안됐다. 그 후손은 120년 지나도록 잘 먹고 잘사는데 그런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문화재 환수, 황실 얘기를 하는 것들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을 문화적 형태로 지금이라도 자라나는 아이들,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쳐서 역사속 일들이 반복되지 않게끔 앞으로 100년, 1000년을 대비하자는 것이다.

- 힘든 점이 많을 것 같다.

▶ 대한민국안에 왕실, 황실이라는 말이 나올 때 마다 활용하고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황사손으로 가장 마음 아프고 힘든 부분이다.

문화재 환수,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봉사 등 우리가 찾아야 될 아픈 역사들을 알리는 것들을 하기 위해 만든 게 사단법인 왕실문화원과 사단법인 대한황실문화원이다. 이 두 기구의 조직은 사회봉사위원회, 문화재환수위원회, 교육위원회, 대외협력위원회로 구성돼 있다. 오로지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왜곡된 역사의 올바른 교육과 일제 강점기 시대에 훼손된 인간 존엄성 회복과 문화원형 복원을 원하는 봉사자들이 모여 시간과 능력을 기부해 운영되는 사단법인이다.(총 40~50명의 위원이 활동하며 상근은 2명이다.)

대한황실문화원과 왕실문화원을 설립한 이유가 조선왕조에 있었던 가치관, 또 대한제국을 설립해서 13년간 유지됐지만 광복 이후 있었던 가치관, 황실 그 안에 있었던 중요한 가치관, 그 시대에 있었던 문화예술적 가치를 현대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가치로 승화시켜 교육적 콘텐츠로 재생산해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이 자긍심, 자존심을 가질수 있도록 계승·발전시켜야겠다는 목적에서다. 왕실, 황실 문화를 연구하고 논하지 않고는 그 때 그 시대의 최고의 가치와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

국가가 황사손에게 위임한 가장 중요한 임무는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에 있었던 문화적 자산중 왕실과 황실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조선왕조와 대한제국때는 유교적 가치를 가장 중요시했다. 선조,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왕의 업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국가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 조상에 대한 예였다. 나라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효고 충이 존재했다. 그 가치를 그대로 계승해서 황사손에게 국가에 전통적으로 있었던 제사,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는 종묘대제를 지내도록 하고 있다.

종묘대제는 조선시대에 춘하추동 4계절과 12월 납일에 봉행했는데 지금은 국가가 지원하는 형식적 형태로 5월과 11월에 두번,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주관으로 치러진다. 이 안에는 600년동안 축적된 조선왕조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있었던 단군조선때부터 내려오던 문화의 가치가 형식으로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를 일반적인 제사로 들여다 볼 것이 아니라 이 땅에 태어난 한민족의 가장 중요한 전통뿌리사상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종묘대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대제때마다 세계 유수한 문화를 연구하는 분들이 보러온다.조선왕릉 40기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 전 2008년 유네스코 답사팀 단장으로 온 중국 교수가 종묘대제와 왕릉제향을 보고 그대로 기록·녹화해 가서 공자사상연구회에서 공자제향을 복원했다. 전세계에서 왕릉제향을 왕조시대 그대로 모시고 있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중요한 민족정신 정통관을 이어가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가 (사)왕실문화원, (사)황실문화원이다.

문화를 복원하고자 하는 단체가 많이 있다. 왕실·황실문화원은 그런 단체나 개인들을 도와 문화복원을 잘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단체다. 이 단체가 왕실이나 황실 이름을 통해 수익사업을 하는 단체가 아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들중에서 왕실이나 황실을 활용해 비슷하게 주식회사 왕실문화원으로 만들어 개인 이익을 취하기 위한 상업행위를 한다면 일제강점기시 친일행위나 다를 바 없다고 본다.

황사손으로서 우리의 중요한 무형적인 가치와 자산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하고 또 많은 나라를 방문해 왕실과의 연대를 도모하고 있다. 그런데 개인적인 이득을 보기 위한 단체를 만들고 사칭한다면 어떻게 한발 더 나아갈 수 있겠나. 그런 것이 황사손으로서 가장 마음이 아프고 다시 생각하게 하고 어찌 보면 저를 묶어 놓는, 더 큰 곳으로 다른 나라와 연계해서 나가야 하는 활동을 저해하는 요소들이다.


senajy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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