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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설 대목은 옛말…작년 반도 안팔린다"

시장찾은 주부 "물가올라서 25만원으론 차례상 못차려"
얇아진 지갑탓에 대형마트 '10분 타임세일' 코너 '북적'

(서울=뉴스1) 서미선 기자 | 2014-01-29 22:59 송고
설 명절을 앞두고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이 제수용품을 구입하려는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2014.1.26/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사람들 손이랑 가방을 봐봐. '짐 무겁다, 무겁다'하는 이가 있나. 다 봉다리 한두개 들고 다니잖아. 저기 배낭멘 사람도 가방이 텅텅 비었네."
설연휴를 앞둔 29일 오후, 서울 최대 전통시장인 제기동 경동시장에서 만난 50대 상인은 설 대목에 장사는 잘 되는지 묻자 대뜸 기자를 돌려세웠다. 발디딜 틈없는 시장에서 실제로 짐이 무거워 보이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나듯 적었다.

자신을 '알밤 아줌마'라고 소개한 김모(가명·60대)씨는 경동시장에서 35년간 장사를 해온 터줏대감이다. 밤, 대추, 곶감, 고사리 4가지만 판다. 모두 명절 인기품목이지만 김씨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는 "작년 설에 비하면 3분의1도 안팔린다. 대목이 대목이 아니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날 경동시장은 사람때문에 길이 막혀 가던 걸음을 종종 멈춰야할 정도로 북적였다. "배 하나 1000원" "부사 맛만 보고 가세요" 호객행위를 하느라 가게마다 목청을 높여 분위기는 활기찼다. 하지만 매출은 실속이 없다고 상인들은 입을 모았다. 조기를 팔던 한 수산물 가게 주인은 '4마리 1만원'이라 쓴 가격표에 줄을 죽죽 긋고 '5마리'로 바꿔썼다. 그는 "아침내내 사가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고쳤다. 대목인데 장사는 해야지"라고 말했다.
인삼 선물세트를 팔던 임모(63·여)씨도 "작년 설에는 하루에 50세트를 팔았고 지금 시간엔 포장하느라 바빴다"며 "올해는 3~4일에 40세트 정도 팔았다. 작년엔 시장 온 사람들도 2배 넘게 많았다"고 전했다.

아쉬운 마음은 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같았다. 중랑구에서 경동시장까지 온 김순옥(68) 할머니는 1단에 2000원 하는 미나리 앞에서 흥정을 하고 있었다. 채소가게 주인이 "서비스 드릴께"하며 미나리 한 모둠을 더 얹어주자 그제야 지갑을 열었다.

김 할머니는 "올해 과일 선물이 들어와서 과일은 안사도 돼 다행"이라며 "원래 설때 물가가 오르는데 작년 설, 추석보다 채소는 그나마 덜 비싸다. 조개, 차례상에 올릴 생선종류도 흥정해서 몇가지 샀다"고 말했다.

시장 골목의 유진축산에서도 흥정이 오갔다. 정경숙(79) 할머니가 1근 1만5000원인 쇠고기 아롱사태를 1만원어치만 달라고 하자 상인은 "그렇게는 안파는데"하고 버티다 결국 고기를 내줬다.

정 할머니는 "작년 설엔 25만원 가져와서 넉넉히 장을 봤는데 올해는 그걸로는 턱도 없다"며 "배 하나가 2500원, 쓸만한건 3000원이다. 물가가 올라 고기도 1만원어치만 산 것"이라고 말했다.

오른 물가보다 근처 대형마트 때문에 손님을 뺏겼다는 상인도 있었다. 리어카에서 채소를 팔던 임모(59·여)씨는 "물가보다는 근처에 대형마트가 2개나 있어 아무래도 손님이 줄어든다"며 "서민들 오는 게 재래시장인데 사람이 많이 와야 더 싸게 팔 수 있어 아쉽다"고 토로했다.
롯데마트 제공. 2014.1.16/뉴스1 © News1


대형마트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롯데마트 청량리점 과일 코너엔 사람이 한둘밖에 없었다. 농수산물 판매원 김미영씨는 "요즘은 사과, 배, 전 등 제수용 농수산물 모두 작년 추석보다는 사가는 양이 조금씩 줄었다"고 말했다.

선물세트를 판매하던 우명숙씨는 "오늘이 명절이동 전날이라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없다. 지난해보다 매출이 3분의1, 4분의1 떨어진 것 같다"며 "목이 아프지만 저녁때 손님 더 올 거라고 기대한다"고 호객행위를 계속했다.

경동시장에서 장을 보고 마트로 왔다는 강광자(70·여)씨는 "시장에서 새우가 20마리 1만원이던데 여기오니까 4500원이어서 더 싸게 샀다. 품목별로 싼것만 골라산다"며 "금리는 내려가고 물가는 올라가니 발품을 팔아야 한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설연휴를 앞두고 설레는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남편과 함께 마트를 찾은 백모(57·여)씨는 "물가 많이 올랐지만 설에는 마음이 좋아서 평소보다 넘치게 사게 되지 않냐"며 "예산보다 물건을 많이 담아버렸다"고 웃었다.

또 이날 마트 시식코너에는 해물동그랑땡, 해물파전 등 부침종류 시식대만 4개가 나란히 마련돼 명절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해물경단을 뒤집던 판매원 이란이씨는 "그래도 설날이라고 매출이 평소보다 늘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한편 대부분 코너가 한가한 가운데 이날 마트에서 가장 인기를 끈 곳은 '깜짝 타임세일'을 한 정육코너였다. 오후 3시35분부터 10분간 주꾸미불고기를 반값에 판다고 방송하자 순식간에 15명이 몰렸다. 100g당 3360원이던 것이 1680원으로 값이 떨어지자 주부들은 5~10인분을 손 크게 샀다.


smi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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