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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대리석 절벽 위에서

에른스트 윙거 지음, 노선정 옮김

(서울=뉴스1) 유기림 기자 | 2014-01-09 10:24 송고
(문학과지성사 제공). © News1


논란의 중심에 있는 20세기 독일작가 에른스트 윙거(1895~1998)의 작품이 121번째 대산세계문학총서로 국내에서 첫 번역됐다.
윙거는 나치 당원이었던 적은 없으나 나치 체제 인사나 반체제 인사를 가리지 않고 교류하며 다중적인 정치적 성향을 작품에 드러냈다. 그는 보통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자로 간주되지만 나치의 전체주의에는 반대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나치 정권에 포섭되지 않는 동시에 2차 대전 이후 연합국이 탈나치화 정책의 하나로 그에게 요구한 설문지를 작성하지 않아 나치, 영국 점령군 모두로부터 작품 출판을 금지당했다. 이렇듯 그는 전쟁을 찬미하고 나치 집권에 일조하는 글을 썼다고 비난받는 동시에 나치에 비판적인 작가로 간주되는 등 엇갈린 평가를 받아 국내에 뒤늦게 소개됐다.

윙거가 1939년 발표한 '대리석 절벽 위에서'는 폭력과 인간 본성에 관한 고찰이 담긴 짧은 장편소설이다. '나'와 오토 형제는 목가적인 땅 마리나의 대리석 절벽에서 식물계를 연구하며 살아간다. 이들에게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산림감독원장과 그가 이끄는 마우레타니아 인들의 횡포로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이 피로 얼룩지게 된다.

이 작품은 발표된 시기와 연관시켜 나치 정권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이 작품이 출간되자 나치 정권의 문화 통제자들은 즉시 윙거를 체포하고 강제수용소로 보낼 것을 건의했으나 히틀러가 직접 말렸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면서도 윙거는 1973년 독일언론 '슈피겔'과 한 인터뷰에서 '대리석 절벽 위에서'로 특정 시대를 가리키거나 특정 정권을 겨냥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즉, 산림감독원장은 나치 정권을 이끈 히틀러에 한정된 인물이 아니라 폭력과 압제를 휘두르는 현재진행형의 독재자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 어떤 저항이라도 완전히 마비시키려는 목표하에 처음에는 소량으로 공포를 나누어 조금씩 흘려보냈고 그 용량을 점차로 늘려나갔다. (……) 산림감독원장은 사악한 의사와 비교할 수 있었는데, 마치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환자의 몸을 절단하기 위해 일단 통증을 키우는 것과 같았다"는 문장은 윙거의 깊은 통찰을 잘 드러낸다.

이는 '대리석 절벽 위에서'가 낯설지 않은 이유다. 여전히 국내외 곳곳에 '산림감독원'들이 존재하기에 이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유효한 하나의 경고이기도 하다.

한편 정치적 성향을 둔 논쟁에도 윙거는 그의 문학적 가치로 확실히 평가받는 작가다. 이 작품에서 윙거가 "아름다움은 권력에 맞서 작용해왔"고 "이 땅의 아름다움은 거의 고통과도 같은 느낌으로 마음속 깊은 곳을 어루만"져준다고 썼듯 그에게 아름다움은 독재자에 대항하는 개념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온 윙거의 시적으로 다듬어진 문체, 미적 묘사 등은 '대리석 절벽 위에서'의 또 다른 미덕이다.

문학과지성사. 1만2000원. 160쪽.


gir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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