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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의 영화읽기] 그래비티-인간과 우주

(울산=뉴스1) 이상길 기자 | 2013-11-09 01:17 송고


평소 우주를 염두에 두고 사는 사람은 세상에 별로 없다. 먹고 사는 것도 벅차 죽겠는데 만화영화 같은 우주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우주는 엄연히 존재하는 공간이다.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갈 뿐이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가장 커다란 실체는 파란 하늘이 아니라 사실 어두컴컴한 우주다.

파란 하늘은 태양이 대지를 비추고 있을 때 잠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평소에 이러한 우주를 생각하며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전문적인 천문학자나 물리학자가 아니라면 그는 현실감이 떨어지는 허무주의자에 불과할까.
하지만 밤하늘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우주를 생각한다고 그를 허무주의자로 치부해버리는 건 왠지 지나친 비약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은가. 우주도 엄연한 진실이다. 우리가 자주 바라보거나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그 때문일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는 도입부에서 우주의 본질부터 규정한다.

"지구로부터 600km, 소리도 산소도 없다. 우주에서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그렇다. 우주에서 인간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산소도 없는데다 지구의 중력에서 멀어진 만큼 행동도 자유롭지 못하다.

우주복을 입고 산소통을 매고 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화 속에서처럼 '잠시' 뿐이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 우주는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공간이다.

이쯤 되면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토록 아늑한 지구가 사실은 지금도 죽음의 공간 속을 계속 떠다니고 있다는 것.

가장 놀라운 건 지구와 태양의 거리다. 거대한 쇠기둥으로 서로 연결된 것도 아닌데 지구는 수 십 억년 동안 태양을 늘 같은 궤도로 돌고 있다.

아찔한 건 만약 궤도를 벗어나 지구가 태양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진다면 인간은 타 죽게 되고, 그 반대로 조금이라도 멀어진다면 얼어 죽는다는 사실.

지구에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요건은 태양과 지구 사이의 최적화된 거리에 있다는 건 이미 과학계에서는 정평이 나 있는 이야기다.

우주를 파고들면 이처럼 아찔한 진실들과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러한 진실을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태양도 결코 영원하지 않다. 학자들에 따르면 태양의 수명은 100억년으로 이미 절반가량을 살았다고 한다.

이 말은 곧 50억년 후면 태양도 별의 소멸절차를 밟은 뒤 우주먼지로 흩어지게 된다.

대니 보일 감독의 2007년작 <선샤인>이란 영화가 태양의 수명이 다해 인류가 멸망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영화 속 허구가 아니다. 지금부터 50억년 후에도 인류가 이 지구에 생존해 있다면 실제로 겪을 일이다.

이처럼 우주를 생각하게 되면 지금 지구에서 영위하고 있는 우리 인간들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소중함을 느낄 준비가 아직 덜 됐다. 돈과 권력, 명예, 출세, 성공 등이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의식을 확장하려는 우리들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바라 막스 허버드'같은 미래학자는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슬기슬기 인간) 이후의 인류는 '호모 유니버살리스(우주적 인간)'로 진화할 것이라고 한다.

우주적 인간, 그것은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서로 협력하며 전체에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새로운 인류를 뜻한다.


<그래비티>의 최대 매력은 스크린에 집중하다 보면 실제로 내가 우주 공간 속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스스로 주인공 스톤(산드라 블록) 박사가 돼서 그의 구사일생 과정을 몸으로 체험하게 되고 마침내 안전하게 지구에 안착한 뒤 그녀가 대지에 입맞춤하는 장면을 통해 카타르시스에 도달하게 된다. 살아있다는 건 정녕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사실 우리 인간들은 이미 행복하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우주에서 생명이 넘치는 유일한 행성일지도 모르는 이 아름다운 지구에서 스스로 불행하다 생각하며 산다는 건 우주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일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실제로 우주 공간에 떠 있는 기분이지만 <그래비티>가 진정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우리 모두가 길가에 핀 한 송이 꽃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깨닫게 될 때 이곳이 바로 천국이 되지 않을까.

또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처럼 우리는 하나뿐일지 모르는 이 지구에서 모두 같은 공기를 마시고,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살지 못할 이유도 없다.
1990년 미 NASA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가 명왕성 부근에서 찍은 지구 모습.동그라미 안의 작은 점이 지구다.© News1

일찍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1990년 NASA의 탐사선 보이저1호가 명왕성 부근에서 찍은 지구 사진을 보고 이런 시(詩)를 썼다.

"여기 있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봤을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것들이 그곳에서 삶을 영위했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의 총합,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적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여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의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의 지도자들,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저기 -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 - 서 살았던 것이다."

10월17일 개봉. 러닝타임 90분.


lucas02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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