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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게임중독법, 또다른 이름의 폭력

(서울=뉴스1) 지봉철 기자 | 2013-11-07 06:25 송고 | 2013-11-07 12:10 최종수정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인 '희극'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책장에 독을 발라 다른 수도사들을 살해하는 호르헤 수사와 이를 쫓는 윌리엄 수사가 등장한다.
윌리엄 수사와 맞닥뜨린 호르헤는 "웃음이 왜 그리 두려운 겁니까?"라고 묻는 질문에 "웃으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사라지면 신은 필요없게 된다"고 답한다.

조금은 뜬금없지만 최근 게임중독법을 둘러싼 정부와 정치권의 모습은 어두운 중세의 마녀사냥을 보는 듯하다.

특히 웃음은 악마의 유혹이고 신성모독이라 믿는 눈먼 호르헤와 게임이 자살이나 각종 범죄, 생산성 저하를 가져온다고 믿는 신의진 의원의 모습이 대비된다. 실제 게임중독법에는 신 의원의 이같은 신념이 담겨있는 듯 보인다.

중독법 반대 온라인 서명운동이 18만명에 육박하고 오프라인으로까지 확대되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관련 법률안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게임이 신체질환·정신질환·범죄·폭력 등 중독 폐해의 원인이라는 실증적 연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논리도 근거도 없는 억지 주장은 또다른 이름의 폭력일 뿐이다. 집념을 넘어 섬뜩한 광기다. 그렇기에 "게임이 그렇게 위험하다면 차라리 법으로 처벌하라"는 게임인들의 절규가 더욱 더 리얼하게 와닿는다.

설사 게임이 마약처럼 위험하다면 먼저 연구를 통해 그 실체를 밝혀내는 것이 의사의 자세다. 그것이 입증되기 전에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취미와 취향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장미의 이름' 마지막은 호르헤 신부가 인류 수천년 지식이 보관된 서고를 불태우며, 스스로 죽음의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것으로 끝난다. 그토록 두려워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 '희극'을 움켜쥐고서 말이다.

게임계는 신 의원의 법안에 대해 1997년 청소년보호법 제정 이후 한국 만화 시장이 타격을 입은 것에 버금갈 정도로 '게임 죽이기'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jan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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