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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장수 '온달장군' 전사지는 '단양 영춘'

(충북 세종=뉴스1) 목성균 기자 | 2013-10-11 06:09 송고
정영호 단국대 석좌교수가 10일, 단양평생학습센터에서 열린 '온달장군 학술대회'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 News1 목성균 기자

서울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가 고구려 장수인 ‘온달장군’이 아차산성(광진구와 구리시 경계)에서 전사했다는 주장과 달리 전사지가 충북 단양군 영춘(永春)지역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회 전국협의회 충북지회는 10일 ‘제17회 단양온달문화축제’를 맞아 충북 단양평생학습센터에서 ‘온달장군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정영호 단국대 석좌교수는 '온달장군의 사적 보존과 현창'이란 주제의 발표에서 “단양 영춘의 경우,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각종 설화와 구비문화, 군사용어의 지명, 온달과 평강의 설화전설 역시 많다”며 “서울 광나루 아차산 부근 설은 기록과 전설이 전혀 나타남이 없고 근거도 없어 언급하기 어려우며 온달장군 최후의 역사적 고장은 단양 영춘”이라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일부 학계에서 온달장군이 아단성(阿旦城) 즉 서울광나루 북쪽 아차산(峨嵯山)아래서 신라군 유시(流矢)에 맞아 전사했다는 설과 신라에 빼앗긴 계립현과 죽령 이서지역인 지금의 단양과 충주 일대를 중심으로 소백산맥 이북의 남한강 상류지역을 수복하기 위해 출정했다가 ‘아단성’ 즉, 단양군 영춘 지역에서 전사했다”는 두 가지 설을 설명했다.
그는 “이 두 가지 설에서 서울 광장나루 부근의 설은 기록과 전설에서 전혀 나타남이 없어 근거가 없으므로 언급이 어렵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그 이유로 “서울 아차산은 동국여지승람 권11 양주목 산천조 아차산에 이르기를 재주남육십칠리(在州南六十七里) 즉, 양주에서 남쪽으로 67리에 위치해 있는 것”이라며 “봉수조에 아차산 봉수는 북쪽 대이산(大伊山)에 응하고 그 서쪽은 서울 남산에 응한다고 했으므로 아차산의 위치가 분명해 졌다”고 밝혔다.

그는 “단양군 영춘(永春)은 조선11대 중종 25년(1530년)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4의 영춘 항목에 의하면 ‘건치연혁’조에 ‘본시 고구려의 을아단현(乙阿旦縣)이었고 신라 때 자춘(子春)으로 개칭됐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온달장군의 인식 확산과 온달장군 사적지 개발 보존 등을 단양군에 주문했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유산학장은 ‘온달의 남하경로와 전사처’라는 주제의 발표에서 “온달이 출정할 때 계립현과 죽령 서쪽 땅을 우리에게 귀속시키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신라군과 싸우다 유시(流矢)에 맞아 넘어져 죽었다(온달전)고 했으므로 서울과는 지형, 지명, 거리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학장은 “온달장군의 전사지를 서울 광나루라고 주장하는 것은 혼돈에서 온 것”이라며 “아단성은 두 개로 웃 아단성은 온달성이고 아랫 아단성은 서울 아차성”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근거로 “광개토왕릉 비문에 고구려영락 6년(396)백제로부터 공취한 58성주 아단성이 나타나는데 서울 광나루와는 맞지 않는다”며 “아차산성 일대 안에 풍납·몽촌토성 일대가 백제 왕성구간이므로 강을 두고 국가 간 적군의 전초기와 맞대응했다”고 설명했다.


sobak2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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