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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신권정치의 무덤이 된 이집트

중동 세속vs 종교 권력쟁탈의 시험대

(베이루트 로이터=뉴스1) 신기림 기자 | 2013-08-19 02:51 송고
군부에 의해 축출된 모하메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을 지지하는 무슬림형제단원들이 지난 12일 카이로의 라바 알 아다위야 광장에서 무르시 대통령 얼굴 가면을 들어 보이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이집트가 최악의 유혈 사태를 겪으면서 '아랍의 봄'으로 탄생한 이슬람 신권정치의 무덤으로 전락하고 있다.
중동 최대인구국인 이집트가 중동 정치·문화의 풍향계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중동 전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이집트의 계몽은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30년 독재가 끝난 지난 2011년 민주화 시위로 시작됐다.

뒤이어 이슬람주의의 무슬림형제단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급부상하며 무바라크의 빈자리를 채웠다.
무슬림형제단은 창립 80년만에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면서 지난 1년 동안 이집트의 새로운 권력으로 자리매김하는 듯했다.

하지만 무슬림형제단이 지지하는 모하메드 무르시 대통령이 집권 1년만에 축출되면서 이슬람 신권정치도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르시 정권이 붕괴된 이집트 경제를 복구하거나 정치적 통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보다 권력을 잡기 위해 강경 이슬람주의를 고수했다고 분석한다.

아랍의 봄이 시작된 튀니지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한 정치분석가는 "이집트의 이슬람 정치권이 이렇게 빨리 몰락한 것에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 맹독성 브랜드가 되고만 무슬림형제단

정치적 관점에서 무르시 정권과 무슬림 형제단은 세속적 반대세력 뿐 아니라 이슬람 연합세력과도 통합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공조를 꾀했던 군부와도 거리가 멀어지면서 이슬람 정치세력은 1953년 독립 이후 이집트를 가장 분열된 상태로 몰아갔다.

캠브리지대학에서 북아프리카를 연구하는 조지 조페는 "무슬림형제단이 민주정치가 운영되는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중동 정치분석가는 "무슬림 형제단이 정치적 자살을 기도했다. 이슬람 정권에 대한 이집트 국민의 신뢰도가 추락했다는 점에서 무슬림 형제단이 정치적으로 회생하려면 수십년이 걸릴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이집트과 중동에서 무슬림형제단은 '맹독성 브랜드'가 됐다"며 이집트에서 몰락은 튀니지, 요르단, 가자(팔레스타인)등 지역의 연맹 세력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무슬림형제단을 비롯한 이슬람 세력이 2011년 민주화 시위 이후 중동 정치권의 핵심으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이집트 국내 뿐 아니라 지역적으로 이슬람 세력에 막대한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 정체성과 생존의 투쟁

이집트, 튀니지처럼 정치구조가 비교적 탄탄한 중동 국가들이 정체성 투쟁을 겪고 있다면 제도권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채 수많은 부족들이 지배하는 리비아, 예멘과 같은 국가들은 생존 문제를 안고 있다.

일례로 리비아에서 무슬림형제단은 주요 무대에서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한다. 리비아의 경우 무아마르 카다피 전 대통령이 축출된 이후 생긴 공백을 무장 세력이 메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멘 역시 인적이 드문 황무지지역은 알카에다 무장세력이, 주요 도시들은 부족의 파벌들이 권력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시리아에서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과 그를 반대하는 반군 사이 대치로 인한 내전이 지속되고 있다.

이라크도 국내 소수인 수니파와 다수 시아파 사이에 충돌로 분열됐다.

일각에서는 중동의 다수 국가들이 과거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새로운 국가로써 정체성을 갖기는 사실상 힘들다고 지적한다. 서방이 민족적 통합 보다 제국주의적 이익만을 좇아 중동을 식민지화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kirimi9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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