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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온종일 하늘 쳐다보며 배봉지 2000개 묶어야 일당 11만원"

나주배 봉지 씌우기 철 본격 시작…1개 59원
'외국인 임금상한선 11만원' 묶여 타지역 유출 많아 일손 부족

(나주=뉴스1) 박영래 기자 | 2023-05-29 10:09 송고
나주배 봉지 씌우기. © News1
나주배 봉지 씌우기. © News1

"하루종일 하늘 쳐다보면서 배봉지 2000개 이상은 묶어야 일당 받습니다."

28일 오후 찾은 전남 나주시 왕곡면의 배 과수원. 부처님 오신 날 사흘연휴의 둘째 날이지만 농번기를 맞은 농촌은 잠시도 쉴 여유가 없다. 연휴 마지막 날부터 많은 비가 예보돼 있어 한시라도 빨리 농작업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 과수원에서는 밤톨만한 크기의 어린 배 열매에 봉지를 씌우는 작업으로 분주하다.

6000평 규모의 과수원에 봉지 씌우기 작업을 위해 투입된 인력은 10명 남짓. 농장주 염모씨(62‧여)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배 봉지씌우기는 배의 색상이나 과피의 코르크화 현상을 막아 상품성을 높일 수 있고, 병충해 예방을 통해 고품질 배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인부들은 저마다 손에 수십장의 노란 봉투를 들고서 하늘을 쳐다보면서 일일이 어린 배 열매를 봉지로 감쌌다. 자신의 키보다 높은 곳에 매달린 배 열매를 씌우기 위해서는 사다리를 이용해야 한다.
농장주 염씨는 "작업은 배 꼭지가 봉지의 중앙에 위치하도록 조심스럽게 씌어줘야 한다"면서 "한쪽으로 치우치면 봉지가 빨리 터져 배의 색이 변하게 되고 상품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루 일당을 사전에 계약하는 다른 농작업과 달리 배 봉지씌우기 작업은 봉지 씌우는 개수에 따라 일당이 차등 지급된다.

봉투 110장이 한 묶음으로 되어 있는 봉지 한권을 씌우면 6500원을 받는다. 당초 나주배원협에서는 6000원을 권장했으나 농가에서는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6500원으로 책정했다.

나주배 씌우는 봉지. © News1
나주배 씌우는 봉지. © News1

110개 한권당 6500원이라 배 봉지 하나를 씌우면 59원꼴이다. 1990년대에는 봉지를 1개 붙이면 2원 정도 했는데 지금은 110개를 하나의 묶음으로 해서 계산하고 있다.

때문에 하루 20권(2200매)의 봉지를 씌우면 일당 13만원을 받는다. 나주지역 숙련된 농민들의 경우는 하루 25권 정도를 손쉽게 씌울 수 있지만 이른바 초짜 외국인노동자들의 경우는 하루 15권 씌우기가 버거운 경우도 있다. 

하루종일 하늘을 쳐다보면서 봉지를 묶어줘야 하기 때문에 상당힌 고된 작업으로 꼽힌다.

문제는 나주배 봉지씌우기 작업이 한철에 이뤄지다보니 농가들마다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그나마 대규모 농장의 경우 외국인 계절노동자를 확보하고 일반 외국인 노동자들을 공급하는 인력업체와 연결을 통해 어느 정도 일손 공급에 어려움이 없는 상황. 하지만 소규모 농가들의 경우는 인력 공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염씨는 "인력공급업체와 외국인 노동자들을 미리 예약해 봉지씌우기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봉지씌우기 작업이 한철에 이뤄지다보니 규모가 영세한 과수원의 경우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 최대 배 주산지인 나주지역 배 농가 수는 1900여 농가로 재배면적은 1700여㏊(510만평)에 달한다.

6000평 기준(15만 봉지)으로 봉지씌우기 작업을 마무리하고 위해서는 일일 10명의 일손이 투입돼 최소한 5일 정도 작업해야 한다.

염씨는 "간단히 계산해도 5000평 기준으로 5일 동안 연인원 50명의 작업자가 필요한데 나주지역 배면적을 500만평으로 잡으면 5일 동안 연인원 5만명의 작업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올해 나주지역에 배정된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205명에 불과하고, 공공형 계절근로자도 50명만 배정됐을 뿐이다.

특히 올해 농번기를 앞두고 지역사회에 확산된 '외국인 노동자 일당 상한선 11만원 권장'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한푼이라도 더 임금을 주는 타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나주지역 농촌현장의 일손부족을 가져왔다.
    
외국인 인력을 공급하는 김모씨는 "초보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 하루 일당을 맞출 수 없어 배 봉지씌우기 작업 대신 다른 지역의 양파 수확이나 고구마 심기 작업으로 옮기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yr200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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