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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광주교도소 앞 총 쏜 계엄군과 총 맞은 피해자 첫 만남

5·18 당시 3공수여단 3대대 중사 김귀삼씨 진실 고백
부상자 후송 맡았던 김태수씨 교도소 앞에서 총 맞아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2023-03-14 15:44 송고
14일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열린 '오늘의 증언이 5·18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 행사에서 김귀삼씨(68)와 김태수씨(68)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김귀삼씨는 5·18 당시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됐던 3공수여단 3대대 출신 중사다. 김태수씨는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다가 큰 부상을 입었다. 2023.3.14/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14일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열린 '오늘의 증언이 5·18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 행사에서 김귀삼씨(68)와 김태수씨(68)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김귀삼씨는 5·18 당시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됐던 3공수여단 3대대 출신 중사다. 김태수씨는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다가 큰 부상을 입었다. 2023.3.14/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1980년 5월 광주교도소 앞에서 시민을 향해 총을 쏜 계엄군과 그 총에 맞은 시민이 43년 만에 직접 만나 사죄하고 용서했다. 

14일 오후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열린 '오늘의 증언이 5·18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 행사. 공법단체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와 공로자회, 사단법인 특전사동지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80년 5·18 당시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된 3공수여단 3대대 중사 출신 김귀삼씨(68)와 총상을 입은 시민군 김태수씨(68)가 참석했다. 이들은 광주교도소 앞에서 총을 쏜 계엄군과 총을 맞은 시민이다. 
광주가 고향인 김귀삼씨는 80년 5월20일 광주에 도착해 진압작전에 투입된 상황부터 광주교도소 경계 작전까지 43년 전 당시를 담담하게 떠올렸다.

김씨 부대는 20일 오후 8시쯤 광주역에 도착해 골목길에서 대기하던 중 시민군과 대치했다. 시민이 밀려들면서 강제 해산하려는 계엄군과 충돌이 발생했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포로로 잡은 시민들은 포승줄로 묶었다. 반항하는 시민은 심하게 구타했다. 

김씨는 "광주가 고향이라 서울에서 내려오기 전부터 형제들이 시위에 나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잡힌 포로 중에 형제나 친구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했으나 부대원들의 구타가 심했다"며 "동생 찾으려는데 매 맞으니까 할수 없이 착검해 시민군을 찌르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 날에는 광주교도소를 시민들이 습격할 것이라는 첩보를 듣고 그곳에서 경계 근무를 섰다.

김씨는 "이때 처음으로 실탄이 지급됐다"며 "지휘부는 '교도소에 접근하는 차량을 잡으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계 근무 중 시내버스 한 대가 교도소 앞 정차하더니 오랜 시간 주차한 것을 보고 버스를 향해 총을 쐈다고 했다. 이 버스에 타고 있던 이들 중 한 명이 시민 김태수씨다.

당시 김태수씨는 시민군 내에서 부상자 후송 업무를 맡고 있었다. 적십자병원과 국군통합병원 등에 부상자를 옮기고, 약품을 전달하는 업무다. 버스 안에는 김태수씨를 비롯해 운전 기사와 학생 시민군 한 명이 타고 있었다.

김씨는 "후송을 하다 도저히 피곤해 잠시 쉬려고 교도소 앞에 버스를 댔다"며 "그런데 갑자기 '두두두두' 총소리가 나면서 '탕' 소리와 함께 운전석에 앉았던 버스 기사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이때 버스기사와 학생은 죽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버스 의자도 총에 맞아 박살 났고, 김씨는 의자 밑으로 숨었다. 그때 의자 시트를 뚫은 총알이 김씨의 오른쪽 허벅지에 박혔다. 김태수씨는 다행히 부상 만 입었다.

14일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열린 '오늘의 증언이 5·18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 행사에서 김귀삼씨(68)가 80년 5월20일 광주역 진압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씨는 5·18 당시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됐던 3공수여단 3대대 출신 중사다. 2023.3.14/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14일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열린 '오늘의 증언이 5·18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 행사에서 김귀삼씨(68)가 80년 5월20일 광주역 진압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씨는 5·18 당시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됐던 3공수여단 3대대 출신 중사다. 2023.3.14/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다음날 군인들은 버스를 수색해 의식이 붙어있던 김씨를 차에 태워 광주교도소로 끌고 갔다. 김씨는 물고문을 비롯해 무자비한 폭행을 당해야 했다. 

다리가 심하게 곪아 병원으로 이동했고, 파편 제거 수술 등을 받고 4개월 뒤 집으로 돌아가 구속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평생 다리에 장애를 입고 살아 심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어야만 했다.

이날 계엄군 출신 김씨는 죄책감에 시달렸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김귀삼씨는 "우리가 쏜 총에 학생들을 비롯해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여태 부끄러워서 국립 5·18민주묘지도 가보지 못했다"며 "피해자인 김태수씨와 함께 기억을 맞춰보니 오늘에서야 그들의 상황을 알게 됐다. 내가 발포한 총의 피해자를 만나니 너무 죄송스럽다"고 사죄했다.

피해자 김씨는 화해하겠다고 했다. 

피해자 김태수씨는 "지난 날 살아오면서 3공수여단 출신 군인은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당한 만큼 갚아주고,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만 갖고 살았다"며 "그런데 지금 와서 군인들 당사자를 만나 보니까 용서가 된다. 그 사람들도 피해를 입었고, 트라우마가 있어서 고생도 했다는 걸 보니 마음 아프다. 화해를 하겠다"고 말했다.

80년 5월 처음으로 목숨을 잃은 故(고) 김경철씨의 어머니인 임근단씨도 이날 행사장에 참석했다.

임근단 어머니는 "눈 감기 전에 꼭 우리 광주시민과 계엄군이 화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며 "지난 2월19일 대국민선언식부터 꼭 오고 싶었다. 나의 한 맺힌 이야기를 하고, 진실 고백하는 군인들을 격려하고 싶었는데 못 와서 미안하다. 앞으로도 꾸준히 진상규명 나서달라"고 독려했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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