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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X 사태, 심층분석]②빛바랜 '탈중앙화 정신'…'돈놀이'에 빠진 거래소

탈중앙화 기반 가상자산 업계, '블록체인' 없는 중앙화 거래소 위주로 변질
문제 하나가 생태계 몰락으로 이어져…최소한의 제재 장치도 부재

(서울=뉴스1) 박현영 기자 | 2022-11-15 07:25 송고 | 2022-11-15 09:20 최종수정
편집자주 연초만해도 '코인계의 JP 모건', '코인계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며 전세계 가상자산 업계를 쥐락펴락하던 샘 뱅크먼-프리드가 이끄는 'FTX 제국'이 한순간에 몰락했다. 고작 서른살의 나이에 156억달러(20조원)에 달하던 그의 자산은 하루 아침에 휴지 조각이 됐다. 영국의 권위있는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과도한 레버리지△위험한 베팅 △ 부실한 담보가 원인이라고 짚었다. 전통적인 금융업에서도 늘 있어온 문제점들이다. 탐욕으로 얼룩진 FTX의 몰락은 지난 5월 테라·루나 사태에 이어 가상자산 업계의 신뢰도에 또 다시 치명타를 가했다. FTX 사태의 의미와 향방을 심도있게 짚어본다.
초대형 가상자산 거래소 FTX의 최고경영자 (CEO) 샘 뱅크먼 프리드와 FTX의 로고. 지난 11일(현지시간) FTX 그룹 내 130개 회사가 미국에서 파산 신청을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 AFP=뉴스1 
초대형 가상자산 거래소 FTX의 최고경영자 (CEO) 샘 뱅크먼 프리드와 FTX의 로고. 지난 11일(현지시간) FTX 그룹 내 130개 회사가 미국에서 파산 신청을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 AFP=뉴스1 

'FTX 사태'로 가상자산 시장이 또 한 번 휘청거리면서 '탈중앙화'로 시작된 비트코인의 정신이 '돈놀이'만 부추기는 거래소 위주로 변질된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나의 문제가 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순식간에 번지는 것도 가상자산 시장의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스테이블코인 UST의 가격이 흔들리며 테라‧루나 생태계 전체가 무너졌던 '테라 사태'에 이어, FTT 가격이 하락하면서 거대 거래소 그룹이 파산한 FTX 사태까지 '코인 제국'이 순식간에 몰락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탈중앙화 기반 가상자산 산업, '중앙화 거래소' 위주로 변질

지난 11일(현지시간) 초대형 가상자산 거래소 FTX가 미국 법원에 파산을 신청하면서 FTX에 자금이 묶인 투자자들은 곤경에 처한 상태다. FTX가 가상자산 출금을 막았기 때문이다.

통상 국내는 물론 미국 등 해외 국가의 은행들도 예금자 보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미국에서는 은행이 파산할 경우 고객 예금은 보호받을 수 있게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지원한다.
단, 가상자산 거래소는 예외다. 은행과 달리 가상자산 관련 기업은 '안전장치'가 없다. FTX 이용자들의 자산이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는 얘기다. 이에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신뢰도는 끝도 없이 하락하는 모양새다.

이 같은 추세는 본래 가상자산 업계가 지향했던 바와는 완전히 반대된다. 최초의 가상자산, 비트코인은 신뢰도 자체가 중요하지 않은, '신뢰가 필요 없는' 세상을 지향했다. 

가상자산의 모든 거래내역은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공공거래장부인 블록체인에 저장되므로 은행을 비롯한 '중앙금융기관'을 신뢰할 필요가 없다는 게 비트코인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가 지향한 바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전통금융에 대한 불신이 탈중앙화를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블록체인이 등장한 배경이다.

그러나 가상자산 산업의 지형이 거래소 위주로 변질되면서 가상자산 시장 역시 누군가를 신뢰해야 하는 곳이 됐다. 거래소에서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은 해당 거래소를 믿고 자금을 맡겨야 하는 실정이다. 

FTX 같은 중앙화 거래소는 단순히 가상자산의 거래만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블록체인 기술이 활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거래소들의 문제가 가상자산‧블록체인 산업 전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평가다.

가상자산의 미래 가능성을 믿고 시장에 진입했던 '큰손'들도 점차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살만 아메드(Salman Ahmed) 피델리티 수석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에 "FTX의 붕괴가 가상자산 생태계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고 지적했다.

단, 가상자산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거래소 위주로 변질된 산업의 문제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가상자산 자체는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나, 거래소는 중앙화된 인프라라는 것이다.

찰스 호스킨슨(Charles Hoskinson) 카르다노 창시자는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번 사건은 가상자산의 실패가 아닌, 중앙집중화된 인프라의 실패다. 자신이 뭘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권력과 신뢰를 얻게 되면서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하나의 위기→시스템 몰락' 나비효과…규제 촉진할 듯

가상자산 시장의 더 큰 문제는 하나의 위기가 시스템 전체의 붕괴로 순식간에 번진다는 점이다. 올해 시장을 뒤흔들었던 테라 사태도, FTX 사태도 이 같은 문제의 사례가 됐다.

FTX의 위기는 지난 2일 코인데스크가 FTX 관계사 알라메다리서치의 재무 구조가 건전하지 않다고 보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다만 본격적인 '몰락'이 시작된 건 자오창펑 바이낸스 최고경영자(CEO)의 FTT 매도 선언부터다. 바이낸스가 FTX의 자체 거래소 토큰인 FTT를 전량 매도하겠다고 하면서 FTT 투자자들이 일제히 매도에 나섰고, FTT 가격은 90% 이상 폭락했다. 이 폭락이 FTX를 파산까지 이끌었다.

시장 유동성이 메마르는 하락장, 이른바 '악순환 사이클'에서는 이 같은 사태가 더 발생하기 쉽다. 새로운 자금이 들어오지 않는 하락장에서 자산 하나의 가격이 폭락할 경우, 그 폭락이 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테라 사태와 FTX 사태 모두 하락장에서 터졌다.

쟁글 리서치는 "FTX는 FTT라는 거래소 토큰을 발행하며 거래소 차원에서 레버리지를 일으켰다. FTT는 트레이딩 전문 회사인 알라메다리서치에 의해 활용, 알라메다는 상승한 FTT 평가 가치를 담보로 다양한 투자 전략을 구사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하지만 전반적인 시장이 하락세를 보이고, 유동성이 고갈되는 긴축 상황에선 담보 자산인 FTT가 흔들리자 FTX 제국이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하나의 문제가 전체 시스템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몰락 과정에서 문제를 막을 제재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전통 금융 시장에선 은행의 부실 채권이 금융시장 불안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기자본비율 등 일종의 제재 장치를 두고 있다. 각 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이 권고하는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함으로써 과도한 위험자산을 보유하지 않도록 제재를 받는다.

반면 가상자산 시장에는 아직 이런 규제 장치가 없다. 거래소 토큰 가격의 하락이 거래소의 파산으로, 가상자산 시장의 불안으로 번질 수 있었던 이유다. 이에 FTX 사태가 규제 마련을 더욱 부추길 것이란 전망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찰스 호스킨슨 카르다노 창시자는 "FTX 붕괴가 미국 규제당국이 새로운 규제를 내놓도록 자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어 그는 "FTX와 엮인 업체들이 모두 지급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 미국 입법 관계자들이 가상자산에 대한 새 규정을 정비하도록 압박할 수 있고, 업계는 강도 높은 규제를 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hyun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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