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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리포트]"링거 맞고도 뜁니다"…택배기사 '16시간 사투'

액션캠 달고 찍은 '배달의 하루'…추석 시즌엔 물량 2배 늘어 400건

(서울=뉴스1) 오승주 기자, 윤이나 기자 | 2015-09-25 11:25 송고 | 2015-09-25 14:39 최종수정


<추석 D-2 '택배기사, 액션캠을 달다' 동영상>
 

안도현 시인은 연탄재도 함부로 차지 말라고 했다. 차가운 재에 묻어 있었던 뜨거움때문이다. 택배기사에겐 그 뜨거움이 현재다. 추석엔 더 뜨겁다. 하루 16시간을 일하며, 400건을 배달한다. 아파도 링거 맞고 또 나간다.

이런 이야기를 제3자인 기자가 이야기해봐야 독자에겐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택배기사의 몸에 '액션캠'(Action Cam)을 달았다. 액션캠은 옷이나 헬맷 등에 매달아 손대지 않고도 촬영할 수 있게 만든 소형 캠코더다. 1인칭 시점에서 보이는 영상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이 액션캠의 특징이다.

택배기사 경력 10년차인 배현수 씨(34)가 직접 액션캠을 몸에 달고 자신의 하루 일과를 촬영했다. 눈여겨볼 점은 우리가 흔히 택배기사의 업무라고 생각했던 배달 작업은 그들의 여러 업무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 가정이나 기업에 물건을 배달하는 작업 외에도 △터미널에서 택배를 분류하는 ‘상차’ △고객사의 택배를 수집하는 ‘집하’ △다시 터미널에 물건을 내리는 ‘하차’ 등 크게 4단계로 하루 업무가 구성된다. 이같은 업무는 평균적으로 오전 7시부터 오후 10~11시까지 쉴 겨를 없이 이어진다.
 

◇ 짐싣기에만 4-5시간, 별도 수당은 없다.
[상차 - 9월 15일 오전 7시 30분, 서울 영등포터미널]
오전 7시가 되면 CJ대한통운, 로젠택배, 한진택배 등 택배 업체의 수많은 배달 트럭이 영등포터미널로 몰려든다. 택배기사의 업무는 이때부터 시작이다. 전국에서 모인 택배가 레일을 따라 밀려오면 그 중 자신의 배달 구역 물건을 일일이 확인해서 트럭에 옮겨 싣는 상차 작업, 일명 ‘까대기’를 진행한다.

상차에만 평균 4~5시간이 걸리지만 대부분의 업체에서는 이 작업에 따로 근무 수당을 주지 않는다. 배 씨는 “업체는 ‘어차피 담당기사가 배달할 물건을 챙기는 일일 뿐’이라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체는 "택배 수수료에 상차 작업 수당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이에요”

[배달 – 오후 1시 30분, 서울 양평동 일대]
가정, 기업 등 택배 도착지에 물건을 배달하는 작업이다. 우리가 흔히 택배기사와 마주하는 시간이 바로 이 때다. 하루에 평균 200개 정도를 배달하고, 명절 시즌처럼 물량이 많을 때는 2배 정도 늘어난다.

택배기사가 가져가는 택배 수수료는 물건당 평균 720~780원이다. 배달에 필요한 휴대전화 요금, 유류비, 밥값, 트럭 수리비 등을 모두 자비(自費)로 해결하기 때문에, 하루에 200건 이상 배달을 해야 한 달 수입이 250~300만원 정도가 된다.

10년째 택배기사를 하고 있는 배 씨는 “10년 동안 택배 수수료가 단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수수료는 고객사(물품을 발송하는 업체)에서 물건을 수거해가는 택배기사의 수거 비용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 일반 고객이 택배 운임으로 지불하는 금액은 기본적으로 2500~3000원이지만, 택배사와 고객사의 계약은 3000원이 아닌 1800~2000원 수준. 차액은 고객사가 가져간다.

택배기사 입장에서는 고객사와의 택배 운임 단가를 낮춰야 더 많은 고객사와 계약을 맺고 택배 업무를 전담할 수 있다. 때문에 계속해서 단가를 낮춰 영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 결과 택배기사가 가져가는 수수료는 오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배달을 할 때 어려운 점은 없을까. 배 씨는 “하루에 주어진 할당량은 무조건 소화해야하기 때문에 아파서 병원에 실려 가도 잠깐 링거 맞고 다시 나와 일을 한다”며 “처자식이 아파도 바로 달려가지 못할 때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10년전보다는 고객들이 택배기사를 대하는 태도도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집에 아무도 없어서 물건을 주문하신 따님과 통화를 했더니 문 앞에 물건을 놓고 가라고 해서 놓고 갔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그 아버지께 전화가 와서 ‘사람이 집에 있는데 왜 문 앞에 놓고 가냐. 다시 와서 배송 제대로 해라’고 막 따지시는 거예요. 제가 문을 두드렸을 때는 아무 인기척도 없었거든요.”(배 씨)

 


 

◇ “끝난 게 아니에요, 이제 빈 트럭을 다시 짐으로 가득 채워야 돼요”

[집하 – 오후 5시 30분, 서울 양평동·대림동 일대]
택배 기사의 트럭은 하루에도 몇 번씩 짐으로 가득 찼다가 비고, 다시 가득 찬다. 고객에게 물건을 다 배달하고 나면 이제 업체에서 전국 각지로 배송될 택배를 터미널로 가져오는 집하 작업을 시작한다. 집하는 택배기사가 하고 싶다고 바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택배기사가 직접 업체와의 거래를 트기 위해 영업을 해야 하고, 거래하고 있는 업체도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 “줄이 뱀 꼬리처럼 서있어요, 어제 4시간 기다렸어요”

[하차 – 오후 11시, 서울 영등포터미널]
밤 10시, 택배 트럭들이 속속 터미널로 도착한다. 터미널 입구부터 트럭들이 뱀 꼬리처럼 줄지어 서있다. 이제 업체로부터 모은 택배를 영등포터미널에 내리는 일이 남았다. 하지만 터미널에 많은 트럭의 택배를 한꺼번에 내릴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아 도착한 순서대로 하차 작업을 한다.

물량이 많은 날에는 4시간까지도 기다려야 한다. 터미널에 모이는 집하량에 비해 터미널 공간이 작고, 터미널에 모인 택배를 전국에 보낼 화물차에 싣는 아르바이트 인력이 부족해 대기시간은 한없이 늘어난다.

 

◇ “택배기사 직업이 나쁘다는 생각은 안들어요. 정말로 정직하게 벌거든요”

친구의 권유로 딱 6개월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택배일이 벌써 10년째다. 배 씨는 “남들이 어떤 시각으로 택배기사를 바라볼지는 모르겠지만, 정직하게 돈을 벌기에 이 직업이 나쁘다는 생각은 안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챙길 가정 없으면 택배 안합니다. 힘들어서”라고 멋쩍게 웃으며 말하는 배 씨.
“택배하시는 분들이 서로서로 ‘몸 관리 잘하자’고 말하는데 현실적으로는 택배업하면서 몸 관리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에요.”(배 씨)
“대소변 같은 기본적인 생리현상도 참아야 한다”던 배 씨 같은 택배기사들 덕분에 우리는 마음 편히 고향으로 추석 선물을 보낼 수 있다.




s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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