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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유엔참전국⑲] 호주, 이 땅의 자유를 위해 산화하다

그린 중령 부인 73년 만에 부산 유엔묘지 남편 옆에 잠들어

(부산=뉴스1) 송보현 기자 | 2023-10-01 05:01 송고
편집자주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유엔 22개국에서 195만7733명이 참전했다.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활약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 <뉴스1>은 유엔평화기념관과 함께 올해 정전협정 70주년을 기념해 한달에 한번 총 21회에 걸친 ‘이달의 유엔참전국’ 연재를 통해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활약상을 조명하고 기억하고자 한다.
21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호주 육군 제3대대의 첫 지휘관으로 6·25 전쟁에 참전한 고(故) 찰스 그린 중령의 배우자인 올윈 그린 여사의 합장식이 엄수된 가운데 외동딸인 안시아 씨가 유해를 합장하고 있다. 2023.9.21/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21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호주 육군 제3대대의 첫 지휘관으로 6·25 전쟁에 참전한 고(故) 찰스 그린 중령의 배우자인 올윈 그린 여사의 합장식이 엄수된 가운데 외동딸인 안시아 씨가 유해를 합장하고 있다. 2023.9.21/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 “고요한 밤입니다. 지난 번에 보낸 편지는 잘 받았는지 궁금하군요. 이곳은 정말 추운 곳입니다. 하지만 추위 속에서도 우리 부대원들은 잘 싸우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점령해야 할 마지막 고지는 20마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끝나고 빨리 집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최연소 대대장으로 공을 세운 육군 찰스 그린(C.H.Green) 중령은 종전 후 아내 올원의 남편이자 세 살 난 딸의 아빠가 됐다. 그러던 중 6.25 전쟁이 발발하자 그린 중령은 호주 정규군의 첫 지휘관으로 참전한다. 그는 막 창설돼 훈련 수준이 빈약했던 보병 대대를 몇 주 만에 건실한 전투부대로 탈바꿈 시키고, 낯선 땅 대한민국으로 향했다.
1950년 9월 28일 부산에 상륙한 그린 중령의 보병대대는 영유리, 박천, 가평 전투에서 승리로 청천강 교부도 확보에 기여 등 아군의 진격에 공을 세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주변 진지를 구축하고 있을 때 그의 텐트 주변에 북한군이 쏜 포탄이 날아들었다. 그 파편이 그린 중령의 복부를 관통해 치명상을 입고 30세 나이로 전사한다.

남편을 그리워했던 올원 그린 여사는 그 마음을 담아 시를 남겼는데 “(중략) 나 이 세상 떠나는 날 한줌 재로 당신 곁에 있겠습니다. 찰리, 내사랑”이라고 썼다. 그 바람은 73년이 흘러 실현됐다. 지난 21일 부산 유엔기념묘지의 그린 중령 묘역에 올윈이 합장되면서 부부가 저 세상에서도 나란히 함께할 수 있게 됐다.

호주 군인들의 순찰 후 휴식 사진 (유엔평화기념관 제공)
호주 군인들의 순찰 후 휴식 사진 (유엔평화기념관 제공)

호주는 유엔 참전국 중에서 세 번째로 전투부대를 파병한 지원국으로 육·해·공군 모두를 파견했다.
1950년 6월 27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안이 결의되자 호주 정부는 소규모일지라도 조속한 참전이 몇 배 더 바람직할 것이라는 멘지 총리의 결정으로 즉각 병력을 파견했다. 총리는 당시 연설에서 “우리의 참전 결정은 결코 유엔헌장의 규정에 얽매여서가 아니라 그 정신(평화와 자유 수호)을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6월 30일 영연방 극동해군사령부에 파견된 2척의 구축함을 미 극동해군사령부에 파견한데 이어 7월 1일 제77전투비행대대를 미 극동공군사령부로 급파했다. 호주 의회 또한 정부의 조치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이에 따라 호주 해군 구축함 바탄(Bataan)호와 프리깃함 숄헤븐(Shoalhaven)호는 정박지인 홍콩을 떠나 오키나와로 향했다. 다음날 일본 이와쿠니(Iwakuni) 기지에 주둔 중인 공군 제77전투비행대대(No. 77 RAAF Squadron)가 미 제5공군에 배속돼 작전 임무를 수행했다.

호주 정부는 900명 규모의 1개 보병대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하고 지원병을 모집하는 한편, 일본서 점령군 임무를 수행하던 제76보병대대 소속 지원병들과 본국에서 보충한 일부 병력으로 제3대대를 편성해 조기 파견했다. 9월 선발대가 부산에 도착한데 이어 9월 27일 그린 중령 인솔하에 960명의 제3대대가 제1진으로 부산에 상륙해 영연방 제27여단에 배속됐다.

호주군 제3대대는 10월 영연방 제27여단과 함께 북진작전에 참가해 개성 북동쪽 화장산에서 북한군과 첫 전투를 벌였다. 또 사리원 전투에서 패주하는 북한군 약 2000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영유리, 박천, 가평, 마량산 전투 등에서 뛰어난 능력을 과시했다.

호주 해군은 개전 초기 한국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미국인 소개 선박과 일본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군수물자 수송선단 엄호임무를 수행했다. 전쟁기간 동안 1척의 항공모함을 포함한 총 9척의 각종 함정을 파견해 해상초계, 해상봉쇄, 해안포격, 유격대 상륙작전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호주 공군 제77전투비행대대는 유엔군 수송기와 폭격기 엄호비행, 38도선 이북에 대한 초계임무, 공산군측 항공기와의 공중전, 지상군에 대한 근접항공지원, 항공폭격 등을 수행했다. 호주공군은 제77전투비행대대 이외에 제36수송편대, 제91혼성비행단, 제391기지대대, 제491정비대대, 제30통신부대, 제30수송부대 등이 참전했다.

호주는 참전 이후 미국과 영국을 연결하는 동맹 관계와 공동목표를 발전시켜나갔다. 또 한국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 등 공동의 가치를 바탕으로 정치, 외교, 경제 등의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호주군 (유엔평화기념관 제공)
호주군 (유엔평화기념관 제공)



w3t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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