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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유엔참전국⑱] 한국전쟁 때 200만명 무료 진료…스웨덴 ‘서전병원’

(부산=뉴스1) 송보현 기자 | 2023-09-01 05:01 송고
편집자주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유엔 22개국에서 195만7733명이 참전했다.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활약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 <뉴스1>은 유엔평화기념관과 함께 올해 정전협정 70주년을 기념해 한달에 한번 총 21회에 걸친 ‘이달의 유엔참전국’ 연재를 통해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활약상을 조명하고 기억하고자 한다.
6·25전쟁 당시 부산 서전병원에서 한국 아이들을 돌보는 스웨덴 의료진. (부산 남구청 제공)
6·25전쟁 당시 부산 서전병원에서 한국 아이들을 돌보는 스웨덴 의료진. (부산 남구청 제공)

“한국인은 끝까지 고통을 참으면서 부상을 이겨냈다. 이런 한국인의 모습은 내가 힘든 시기를 겪을 때마다 극복하는 힘이 됐다.”

스웨덴은 한국과 인연이 깊은 나라다. 특히 부산과 각별하다. 한국전쟁 당시 스웨덴은 가장 먼저 도착해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의료지원부대다. 스웨덴 적십자병원(The Swedish red Cross Hostital: SRC)은 체류기간 6년 6개월 중 의료진 총 1124명을 파견하고 돌본 환자 수는 200만명에 이른다. 
스웨덴 정부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곧장 한국에 대한 지원 의사를 밝혔다. 약 600여명의 의료진이 파견을 희망한 가운데 이들 중 176명이 최종 선발돼 같은해 9월 군함을 타고 부산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부산상업고등학교 본관(현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을 병상 200개 규모로 개조해 스웨덴적십자야전병원을 차렸다. 그해 겨울 피란 수도 부산에 한파가 닥치자 야전병원 의료진은 동상에 걸려 병원을 찾은 피란민을 외면하지 못했다. 의료진은 포로로 잡힌 북한군과 중공군도 내치지 않았다.  

야전병원은 개원과 동시에 인천상륙작전과 총 반격작전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을 치료했다. 1951년 후반기로 넘어가면서 전선이 소강 상태로 바뀌면서 민간인들을 진료하는데 전념했다. 의료진들은 6개월의 복무기간을 넘어 보통 1~2년 이상 장기근무에 지원했다. 스웨덴 적십자사는 효율적인 병원 운용을 위해 최신 의료장비와 의약품 공급을 계속했다.

서전병원 입구 (유엔평화기념관 제공)
서전병원 입구 (유엔평화기념관 제공)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자 야전병원은 부산스웨덴병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밀집한 부산 수산대(현 부경대)로 거점을 옮겨 민간인 치료에 집중했다. 당시 시민들은 스웨덴병원을 한자식 표기에 따라 ‘서전(瑞典)병원’이라 불렀다.
또한 한국의 재건을 돕고자 의료지원과 민간구호업무에도 참여해 1954년 말에는 민간인 치료 병원으로 재편됐다. 철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중환자 치료를 도맡아 임무를 수행했다. 

철수 후에도 스웨덴 정부는 덴마크, 노르웨이 정부와 공동으로 유엔한국재건단과 함께 1958년 서울에 의료센터(국립의료원의 전신)를 설립하고 선진 의료기술을 보급, 국내 의료수준을 높이는데 노력했다.

6.25전쟁 당시 의료진으로 부산을 찾았던 스웨덴 참전용사와 가족들이 부산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석당미술관에서 열린 '서전병원 사진전 개막식'에 참석해 사진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7.9.13/뉴스1 © News1
6.25전쟁 당시 의료진으로 부산을 찾았던 스웨덴 참전용사와 가족들이 부산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석당미술관에서 열린 '서전병원 사진전 개막식'에 참석해 사진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7.9.13/뉴스1 © News1



w3t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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