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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유엔참전국⑮] 유엔 전체병력 91%인 178만9000명 파병한 미국

한미 동맹의 출발…유엔군 선두에서 용기와 희생 보여줘

(부산=뉴스1) 송보현 기자 | 2023-06-01 06:00 송고
편집자주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유엔 22개국에서 195만7733명이 참전했다.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활약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 <뉴스1>은 유엔평화기념관과 함께 올해 정전협정 70주년을 기념해 한달에 한번 총 21회에 걸친 ‘이달의 유엔참전국’ 연재를 통해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활약상을 조명하고 기억하고자 한다.
맥아더 장군의 전방시찰 (유엔평화기념관 제공)
맥아더 장군의 전방시찰 (유엔평화기념관 제공)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이 남침하자 미국은 즉각 반응했다.

유엔은 곧바로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고 ‘북한군의 침략 중지 및 38선 이북으로의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다. 핵심은 “유엔은 대한민국이 무력침략을 격퇴하고 그 지역에서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원조를 제공하여 줄 것을 유엔 회원국들에 권고한다”는 내용이었다.
결의에 따라 미국 수뇌부는 참전을 결정했다.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에서 “북한의 남침과 유사한 사건이 제2차 세계대전을 유발했다”며 “이를 제지하지 않으면 제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뿐만 아니라 유엔의 창설 원칙마저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미군 극동사령부는 6월 26일 해·공군을 동원해 한국에 거주하는 비전투 미국인들을 일본으로 철수시키고 적극적으로 전쟁에 개입했다. 미국은 전쟁 발발 초기인 6월 27일 참전해 7월 6일 죽미령 전투를 시작으로 1953년 7월 정전협정까지 약 10여일간의 물리적인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전투와 작전에 임했다. 

또한 극동군 예하 주일미군부터 미 본토와 해외기지의 육·해·공군을 투입해 한국을 지원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전쟁에는 총 22개국(전투지원 16개국, 의료지원 6개국) 195만7733명이 참전한 가운데 미군은 전체 병력 비율 91%에 달하는 178만9000명을 차지했다. 

미 육군은 전쟁 초기부터 9개 사단과 2개 연대전투단을 포함, 수많은 지원부대들을 한국에 파병했다. 월 평균 20만~30만명이 넘는 병력을 유지하며 약 200여개 이상의 전투를 마주했다. 이들의 희생과 용기로 전쟁 초기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정전협정까지 가는 동력이 됐다.
북한지역에서 성조기를 꽂는 미군병사들 (유엔평화기념관 제공)
북한지역에서 성조기를 꽂는 미군병사들 (유엔평화기념관 제공)

미 해군은 제7함대·제90기동함대·제95기동함대가 작전을 수행했다. 또 공중폭격·함포사격·상륙병력수송·인원과 물자 수송 등 활동을 전개하며 한반도 주변 해역을 장악하며 유엔군의 전황을 유리하게 만드는데 기여했다. 

미 공군은 극동공군이 주축이돼 작전을 수행했다. 공중 지원은 주요 작전(수력발전소 폭격작전·평양 대공습작전·저수지폭격작전)을 성공으로 이끌며 전쟁 초기부터 후기까지 공산군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로 인식됐다. 

미군은 첫 오산전투를 시작으로 대전전투·진주전투·영산전투·낙동강방어선전투·인천상륙작전·서울탈환작전·군우리전투·장진호전투·지평리전투 등 곳곳에서 유엔군의 전투를 이끌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이끈 유엔군은 완벽한 통일에 이르진 못했지만 6·25전쟁을 참전하면서 '전쟁 이전 상태로의 회복'이란 목표를 달성했다. 이를 이루기 위해 유엔군의 선두에서 용기와 희생을 보여줬다.


w3t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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