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 유산이 더 많아' 지미 카터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
파나마 운하 반환과 캠프 데이비드 협정, 이란 인질사태 등
- 강민경 기자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100세.
미국의소리(VOA)는 100년을 살다 간 카터의 삶에서 중요한 몇 가지 순간을 △파나마 운하 반환 △캠프 데이비드 협정 △이란 인질 사태 △카터 센터 설립 등을 꼽았다.
카터는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을 지냈다. VOA는 그가 재임 시절보다는 퇴임 이후에 더 많은 유산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카터는 취임 첫 해 파나마 운하의 통제권을 파나마에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그는 1977년 9월 7일 당시 파나마 지도자였던 오마르 토리호스와 협정을 체결하고 1999년 12월 31일부터 파나마 운하 통제권을 파나마에 완전히 넘기기로 합의했다.
당시 카터는 "강압이 아니라 공정함이 외국과의 거래에서 중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일로 카터는 국익을 내버렸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이를 계기로 훗날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 이미지를 벗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터는 1978년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을 대통령 전용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불러 대화하도록 했다.
카터의 중재로 13일간의 비밀 협상 끝에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이후 두 개의 평화 협정을 체결했고, 이듬해 이집트는 아랍 국가 최초로 이스라엘과 수교한 국가가 된다.
당시 카터가 거둔 외교적 승리는 2002년 그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을 때도 언급됐다고 VOA는 전했다.
1979년 11월부터 1981년 1월까지 444일 동안 미국인 52명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에 억류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일은 카터가 재임에 실패하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평가된다.
1980년 4월 미군의 인질 구출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게 특히 결정타가 됐다. 이른바 '독수리 발톱' 작전은 집합 장소인 이란 야즈드에 인질 수송용 헬리콥터가 모래폭풍과 기기 고장으로 도착하지 못하면서 중단됐다.
이후 철수 과정에서도 미국 항공기 두 대가 충돌하면서 군인 8명이 숨지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 일로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이 책임지고 사임했다. 당시 인질들은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한 날에야 풀려났다.
카터는 퇴임 후 90대까지 활발하게 인권 증진과 국제 평화를 위해 헌신했다. 퇴임 대통령들의 귀감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그는 1982년 갈등 해결과 민주주의·인권 증진, 질병 퇴치를 중점으로 하는 카터 센터를 설립했다.
카터는 퇴임 이후 아이티와 동티모르 등 개발도상국의 선거를 감독하고 중재자로서 세계 곳곳을 누비며 까다로운 국제 갈등을 중재하는 등 가장 성공한 전직 대통령으로 평가됐다.
생전에 그는 넬슨 만델라가 2007년 설립한 전직 국가수반 단체 '디 엘더스'(The Elders)의 일원이었다. 그는 2010년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고메스가 북한에 억류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디 엘더스 소속 전직 국가수반 3명과 함께 방북하기도 했다.
pasta@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