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팁 법안 시행에 식음료 값 인상 위기…고객들 '눈총'[통신One]

새로운 팁법, 서비스 요금·팁 전액 직원에 지급도록 강제
英 정부 "추가 조치 예정"…식음료 인상 시 관광객 지갑에도 영향

영국의 카드 결제 서비스 업체인 도조(Dojo) 홈페이지 갈무리. 2024.10.09/

(런던=뉴스1) 조아현 통신원 = 영국에서 서비스 요금(Service Charge)과 팁(Tip) 전액을 직원에게 돌려주도록 강제하는 새로운 팁 법안(Tipping law)이 시행되면서 식당이나 술집, 카페의 식음료 가격이 인상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식품 접객업을 운영하는 각 사업체마다 식음료 가격을 전체적으로 올릴 경우 영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지갑 부담도 한층 커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새로운 팁 법안은 식음료 업체뿐 아니라 호텔, 택시회사, 미용실 등 서비스업 전반에 적용됐다. 법안이 처음 발의된 지 8년만이다.

해당 법안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투명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노동의 대가를 가져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동안 고객에게 부과된 10~15% 상당의 서비스 요금은 직원이 아닌 고용주가 챙겨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서비스 요금이 계산서에 포함돼 있으니 웨이터나 웨이트리스에게 팁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고객들도 많지만 실제로 해당 요금은 직원들에게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고용주들은 고객들이 지불한 서비스 요금의 일부를 해당 사업장의 전기료나 냉난방비 등 유지 비용으로 사용해 왔다.

웨이터와 웨이트리스는 고객들이 서비스 요금 이외에 별도로 건네주는 팁이 있을 경우에만 가져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사업장이 고객으로부터 거둬들인 서비스 요금과 팁 총액이 얼마인지, 어떤 방식으로 자신에게 분배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이번 팁 법안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서비스 요금과 팁을 100% 가져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시행령을 살펴보면 관련 산업 종사자들은 고용주에게 서면 요청을 할 경우 사업체가 받은 서비스 요금과 팁 기록 전체 금액과 자신에게 지급된 금액을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서비스 요금과 팁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면 직원은 고용 재판소를 통해 고용주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현행법을 위반한 고용주에게는 벌금이 부과되고 해당 고용주는 직원에게는 보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새로운 법안 시행으로 서비스 요금과 팁을 모두 직원에게 지급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일부 레스토랑은 수입원을 확보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딤섬 레스토랑 체인점인 핑퐁(Pingpong)은 기존 고객 계산서에 12.5% 수준으로 부과하던 서비스 요금을 '브랜드 요금'으로 이름을 바꿔 15%로 인상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변경했다. 고객이 브랜드 요금을 낼지 말지는 선택 사항으로 남겨두고 이로 인한 수익의 90%는 직원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핑퐁의 관련 내부 정책은 새로운 팁법이 시행되기 전에 사업체의 수익을 미리 보전하기 위한 꼼수로 여겨지면서 고객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고급 레스토랑 체인점인 디아이비(The Ivy)는 고객에게 서비스 요금을 부과하는 대신 직원들의 시급을 일정 금액 인상키로 했다.

서비스 요금과 팁이 모두 직원에게 돌려줘야 할 비용으로 전환되면서 고용주들은 식음료 자체에 대한 가격 인상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영국의 레스토랑 예약 관리 플랫폼인 '레스다이어리(ResDiary)'가 올해 3월 발표한 설문조사에 결과를 보면 레스토랑 10곳 가운데 9곳(89%)이 올해 메뉴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이미 응답한 바 있다.

매년 오르는 임대료와 물가 상승으로 이미 지갑이 얇아진 고객들은 볼멘소리를 쏟아낸다.

정부가 나서서 식품 접객업체들이 서비스 요금을 부과하는 행위를 금지시키고 새로운 팁법 시행 이후 식음료 비용이 오르는 것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영국의 카드 단말기와 결제 서비스 제공 업체인 도조(Dojo)가 올해 1월 자체 데이터를 활용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영국인 가운데 약 절반이 식당에서 지불하는 서비스 요금을 없애고 싶다는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미국식 팁 문화를 닮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심리적 반감과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직원에게 돌아가야 할 서비스 요금과 팁을 오랜 기간 가로채 온 기업들이 마치 합법적인 수입원을 빼앗긴 것처럼 불평하는 것에 동조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글로벌 회계 법인 RSM UK가 지난달 발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 소비자 가운데 80%가 서비스 요금과 팁은 직원에게 100% 지급돼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영국 기업통상부는 이번 팁 관련 법안 시행으로 그동안 고용주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던 2억 파운드(약 3521억원) 상당이 노동자 몫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저스틴 매더스 영국 노동권익부 장관은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이들을 우리 경제의 중심에 두기 위한 많은 조치 가운데 첫 번째 단계에 불과하다"며 "접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정당한 팁을 받을 수 있도록 추가 조치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영국의 낡은 노동법은 조속한 개정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현 경제 상황에 맞는 법안을 제정하고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도록 한다'는 계획을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법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에 있는 레스토랑·카페·술집·호텔·택시회사·미용실 등 서비스 업계 전반에 적용된다. 북아일랜드의 경우 자치 정부가 결정하도록 권한이 위임됐다.

tigeraugen.ch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