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해리스 맹추격에 '뿌리 따지기' 공격…'신뢰 낮추기 시도'

갑자기 "인도계인지 흑인인지 모르겠다"…'견제와 도발'
정치학 교수 "지지층 활력 넣으려는 것"…오바마도 겪어

3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이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전미흑인언론인협회(NABJ) 초청 토론에 참석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07.31. ⓒ AFP=뉴스1 ⓒ News1 김종훈 기자

(서울=뉴스1) 조소영 기자 =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민주당)에 대해 "인도인인지 흑인인지 모르겠다"며 이른바 '뿌리 문제'를 꺼내들고 나선 것은 해리스 부통령의 급격한 추격을 차단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 바이든 대통령에 이어 사실상의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신뢰도'를 낮추려는 속내로, 다만 이런 공격은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때에도 비슷하게 구사됐던 보수층의 '고전적 수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해리스 부통령은 캘리포니아주(州) 오클랜드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는 각각 자메이카(아프리카), 인도 이민자 출신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여러 차례 자신이 혼혈이라고 밝히고, 흑인과 남아시아계 정체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2019년 한 라디오 쇼에서 "저는 흑인이고, 흑인인 것이 자랑스럽고, 흑인으로 태어났고, 흑인으로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해 그는 인도계 배우와 인도 전통 요리 '도사'(Dosa)를 함께 만드는 영상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전날(7월 31일) 전미흑인언론인협회(NABJ) 초청 토론에서 해리스 부통령에 대해 발언한 것은 보통의 미(美) 유권자들 사이에서 '엉뚱한 주장'으로 보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는 말이 나온다.

당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녀(해리스 부통령)는 항상 인도계였고, 인도계 유산을 홍보했다. 몇 년 전 우연히 흑인으로 변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사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사실 관계'를 인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엉뚱한 언급을 하고 나선 이유는 '견제와 도발'로 보면 이해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6월 TV토론회에서의 선전, 7월 암살 미수 사건을 겪으며 애초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바이든 대통령을 상대로 '대세론'을 형성할 분위기였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직을 내려놓고, 해리스 부통령이 맞수로 등장한 뒤 대세론은 무너지고 지지율은 급격히 따라잡힌 상황이 됐다.

키스 개디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정치학 교수는 AFP 통신에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해당 발언과 관련 "아무도 더 이상 암살 시도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주목을 받고 싶은 강박 때문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개디 교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토론에서 흑인 여성 언론인 등과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는 그가 '사자 굴의 검투사'를 연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모습을 통해 '주요 표심'(백인)에 호소했다는 것이다.

케리 헤이니 듀크대학교 정치학 교수 또한 "그녀(해리스 부통령)는 흑인과 인도계 유산을 포용했다"며 "트럼프의 '인종 미끼' 공격은 자신의 지지층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1일(현지시각) 텍사스주 휴스턴의 공항에서 워싱턴으로 출발하기 위해 전용기를 타고 있다. 2024.08.02.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 같은 '뿌리 공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2011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본토 태생에 관한) 출생 기록이 없다. 있을 수도 있겠으나 거기에 그가 무슬림이라고 돼 있을지 모른다"는 등 오바마 당시 대통령의 출생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적이 있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과 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미국에서 태어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이라는 점에서 일부 극우 성향 인사들과 함께 발맞춰 그의 뿌리를 흔들고 나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버지는 케냐 출신이고, 어머니는 미 캔자스 출신 백인 여성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선 출마 때부터 계속돼 온 '케냐 태생' 의혹 제기에 하와이에서 출생했음을 입증하는 간이 서류를 당시 공개한 바 있다. 그럼에도 극우 측의 출생 의혹 제기는 지속됐으나 오바마 대통령은 '철저히 보호되어야 하는 개인 사생활 기록이 정치적 이유로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며 관련 서류 공개를 거부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러다가 결국 2011년 8월 백악관 웹사이트를 통해 출생 서류를 공개하면서 논란을 정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 이후로도 5년이 지난 2016년에야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태생이라는 점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이자 현재 그의 선거 운동을 돕고 있는 알리나 하바가 소셜미디어(SNS)상에서 해리스 부통령을 향한 '뿌리 발언'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고 허핑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하바는 8월 1일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에서 열린 트럼프 전 대통령을 위한 집회에서 해리스 부통령을 거명한 뒤 "저는 강한 여성이자 엄마, 변호사, 미국인이다. 그리고 당신과 달리 나는 내 뿌리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으며, 헌법을 가지고 놀지 않는다"고 말했다.

SNS에서는 하바의 발언을 두고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카멀라는 자신의 뿌리가 분명하다"거나 "인종차별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다우닝가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활짝 웃어보이고 있다. 2024.03.18. ⓒ 로이터=뉴스1 ⓒ News1 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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