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우정' 실리콘밸리 창업자들 "왜 그 후보 지지하냐"며 '으르렁'

'페이팔 마피아'에서 실리콘밸리 vs 실리콘밸리 싸움
'세금 인하, 암호화폐 지원'에 트럼프로 돌아선 이들 늘어나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 AFP=뉴스1 ⓒ News1 박재하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민주와 공화 양당 지지로 갈리며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간 기술 기업 업계 내부에서는 싸움이 항상 있었지만, 공개적으로는 우정과 동맹 관계임을 과시했는데, 이번 대선은 거리낌 없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고 NYT는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대 실리콘밸리 싸움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은 이른바 '페이팔 마피아'다. 1990년대 세계 최초 전자결제업체였던 페이팔을 세우고 이끌었던 초창기 인사들인 이들은 페이팔을 매각한 대금으로 각각 여러 기업 창업에 관여하면서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파워그룹이 됐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유튜브 공동 창업자인 채드 헐리와 스티브 첸, 링크드인을 만든 리드 호프만, 오픈 AI 공동 창업자 피터 틸, 야머 CEO인 데이비드 색스 등이 해당한다.

이달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에서 총격을 받은 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전 페이팔 최고운영책임자(COO)였던 색스는 X에 "좌파가 이런 일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들었다"며 기술 투자자이자 민주당의 주요 기부자인 호프만 링크드인 창업자에 대한 게시물을 링크했다.

전 동료였던 호프만이 트럼프를 지나치게 비판하고 그에 대한 소송에 자금을 지원해 온 것이 트럼프에 대한 증오 살인(미수)을 일으켰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머스크 역시 호프만의 이름을 거론하며 이들이 "가장 이루고 싶었던 소원을 이뤘다"고 비꼬았다.

NYT는 실리콘 밸리에서 기술 억만장자가 기술 억만장자를 공격하는 광경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전했다. 한때 나란히 앉아 일하고 서로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이들의 우정이 깨진 것은 물론, 나중에 거래 기업이 되거나 취업할 가능성도 있기에 자제했던 상대에 대한 비난을 거리낌 없이 하게 됐다는 것이다.

페이팔 마피아를 넘어서서 싸움은 더 확대되고 있다. 실리콘 밸리 벤처 투자가인 로저 맥네미는 X에,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실리콘밸리 벤처 기업 앤드리슨 호로비츠의 창업자인 마크 앤드리슨과 벤 호로비츠를 '반민주적'이라고 비난했다.

맥네미는 이전에 호로비츠가 이끄는 회사에 투자하기도 한 가까운 관계였다. 이에 호로비츠는 맥네미와의 25년간의 사업관계를 언급하면서 "정말인가 로저? 나랑 의견이 다르다고 제일 먼저 생각한 게 트윗으로 나를 공격하는 건가?"라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수년 동안 실리콘밸리는 자유주의의 보루로 여겨졌다. 하지만 대선 정국이 되면서 색스, 머스크, 앤드리슨, 호로비츠 등이 최근 몇 년 사이 트럼프를 지지하고 나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기술 기업에 대해 더 많은 규제를 내리고 소송까지 벌이자 바이든 행정부의 기술 정책에 불만이 쌓인 것이다.

이들은 그래서 세금 인하를 추진하고 암호화폐 산업을 지원하겠다고 한 트럼프로 돌아섰다. 민주당 성향의 기술 기업 임원들과 투자자들은 트럼프가 거대 IT 기업 해체, 엄격한 이민 정책을 쓰기에 기술 산업에 유리하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암살 사건 이후 호프만과 틸, 색스와 머스크는 서로 뒤엉켜 더 세게 공격하고 비난하는 중이다. 싸움에 벤처 투자가인 시리 스리니바스도 참전했고, 삭스는 민주당 지지자인 넷플릭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를 "쓸모 있는 바보"라고 불렀다.

양분화된 싸움 가운데서 이목을 끄는 것은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의 행보다. 그는 2016년 트럼프 당선 후 "진보는 직선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면서 트럼프의 당선을 반기는 듯했다. 이달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암살 시도 후 주먹을 불끈 쥐었던 트럼프를 칭찬했다. 그는 하지만 이 칭찬 외에는 정치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사안에 정통한 두 관계자는 정치 관련 큰 목소리를 내지 않기로 한 저커버그가 워싱턴과, 그리고 트럼프가 혹시라도 재선될 경우의 그와의 긴장된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리어) 유리할 수 있다고 보았다.

ky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