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남북전쟁 4년 만에 종료'…"분열에서 다시 통합으로" [역사&오늘]

4월 9일, 남군 사령관 리 장군 북군에 항복

로버트 E. 리 장군(오른쪽)의 애퍼매턱스 코트하우스 항복. (출처: 토머스 내스트, 채색화(1941), Granger Historical Picture Archive,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65년 4월 9일, 버지니아주 애퍼매턱스 코트하우스에서 남군 사령관 로버트 E. 리 장군이 북군 사령관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해 미국 남북전쟁(1861-1865)은 4년 만에 공식 종료됐다.

남군은 이 항복으로 마지막 주력 부대 북버지니아군의 패배를 인정했다. 리 장군은 약 2만 8000명의 병사와 함께 항복했다. 그랜트 장군은 남군 병사들을 관대하게 대우하기로 약속했다. 이들의 안전한 귀가를 허용했고, 심지어 그들에 대한 북군 병사들의 조롱도 금지했다.

남북전쟁은 1861년 노예제도 폐지론자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북부의 지지에 힘입어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노예제도 기반 경제체제이던 남부 주들이 연방을 탈퇴하면서 시작됐다. 남부 7개 주는 북부 중심의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 USA)에 맞서 미연합국(The Confederate States of America, CSA)를 결성하고 내전을 일으켰다.

링컨 대통령은 1863년 1월 노예해방을 선언했다. 같은 해 7월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승리한 북군은 승기를 잡았다. 4개월 후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건립 기념식에 참석한 링컨 대통령은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를 품을 것이며,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가 이 땅에서 소멸하지 않게 할 것이다!"라는 역사적인 연설을 남겼다.

남북 양측 사망자는 약 62만 명(북군 36만 명, 남군은 26만 명 추산)에 이르렀고, 부상자도 300만 명 이상이었다. 당시 미국 인구가 3000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숫자다. 링컨은 닷새 후 총을 맞고 그다음 날 숨졌다.

남북전쟁은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내전이었으나 종전 직후 서부가 개척되면서 본격적인 산업화가 진행되고 빠른 재건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인종차별 문제가 다 해결된 게 아니었고, 오늘날까지도 미국 사회 내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