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고등법원, 어산지 美송환 '보류'‥"사형 않겠다 보장해야"
美법무부 4월까지 보장해야…관련 재판은 5월에 열기로
인도 명령에 항소할 길 열려…5년 끈 법정다툼 길어질수도
-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각국 정부와 기업의 미공개 문서를 폭로해온 국제 비영리단체 위키리크스를 설립한 줄리언 어산지의 미국 송환에 영국 고등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26일(현지시간) 영국 고등법원은 미국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어산지에 대해 미 사법당국이 사형하지 않겠다고 보장해야 그의 신병을 넘겨줄 수 있다고 결정했다.
2명의 고법 판사는 이날 판결문을 통해 어산지가 현재 미국 검찰에 기소된 혐의 중 사형에 해당하는 혐의는 없지만, 향후 반역죄 등 중죄로 기소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그의 미국 송환 결정을 이대로 집행하는 것은 자국법상 불법이라고 판시했다.
또한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0년 위키리크스 사태와 관련, 사형을 주장한 발언을 들어 송환 중단을 요구한 어산지 측의 논거를 일부 받아들였다. 미국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미 수정헌법 제1조 표현의 자유를 주장할 자격이 없다는 미국 정부 측 변호인단의 주장은 기각했다.
그러면서 미 국무부가 오는 4월16일까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사형 언도를 제외하겠다는 확약서를 법원에 제출하지 않을 경우 미 송환 확정판결에 대해 항소할 자격을 부여하겠다고 했다. 미 국무부의 보증이 충분한지 여부에 대해선 법원은 오는 5월20일 판결하기로 했다. 그때까지 어산지는 영국에 계속 구금된다.
미 정부는 어산지가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관한 수십만 건의 군사 및 외교 비밀 문서를 공개한 혐의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여러 차례 그를 기소했다. 어산지는 에콰도르 런던 대사관에 7년간 도피해 있다가 2019년 영국 경찰에 체포돼 현재까지 런던 벨마쉬 교도소에 구금됐다.
그의 미국 송환 문제를 두고 영국 하급 법원은 2021년 1월에 어산지의 정신 건강과 미국 교도소에서의 자살 위험을 들어 미국 송환을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미 정부가 어산지를 악명높은 감옥인 'ADX 플로렌스'에 가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고등법원은 같은 해 12월에 미국 인도를 허용했다.
이에 불복한 어산지 측은 영국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2022년 3월, 어산지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법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제기'하지 못했다며 이를 각하했고 당시 영국 내무장관이었던 프리티 파텔은 그의 인도를 승인하는 명령에 서명했다.
영국 고등법원의 이번 판결은 어산지 측이 내무장관이 서명한 이 인도 명령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허가를 요청해 진행됐다. 이날 법원이 조건부로 항소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만큼 5년을 끌었던 어산지의 미 송환 여부는 추가적인 법정 다툼으로 결정될 전망이다.
이날 어산지의 아내인 스텔라 어산지는 영국 고등법원 밖에서 취채진과 만나 "이번 결정이 매우 놀랍다"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보증을 해선 안 되며 기소 자체를 취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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