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낙태 이슈' 뭐길래 대선판 뒤흔드나[딥포커스]
2022년 '로 대 웨이드' 판결 파기돼 '뜨거운 감자' 떠올라
낙태권 걸린 선거 줄줄이 공화당 패배…트럼프도 '조심'
- 조소영 기자
(서울=뉴스1) 조소영 기자 = 오는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이 '임신중지(낙태)권'으로 들썩이는 분위기다. 대권 유력주자로 꼽히는 민주당 소속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은 '낙태권 보장'을 선점하고 나섰고, 공화당 소속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의 기조이기도 한 '낙태권 반대'를 무조건 주장하기보다 다소 조심스럽게 관련 입장을 밝히는 기류다.
애초 낙태권은 선거 성패를 좌우할 정도의 주제로 꼽히진 않았다. 오랜 기간 민주당이라면 '찬성', 공화당의 경우 '반대' 입장으로 나뉘는 당파성 강한 주제 정도로 평가됐지만, 지난 2022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전격 파기하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원고 '제인 로'(가명)와 피고 측 '헨리 웨이드' 텍사스주 댈러스카운티 지방검사장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성폭력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 로가 낙태를 하려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고, 연방대법원이 최종적으로 로의 손을 들어준 매우 역사적인 사건이다.
연방대법원은 당시 1868년 수정헌법 14조(사생활 보호 권리)를 근거로 여성의 '사생활의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낙태에 과도한 규제가 따라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최근까지 약 50년간 임신 24주까지는 낙태가 가능했다.
하지만 2022년 6월 연방대법원에서 이 판결이 이례적으로 뒤집혔다. 대법원이 임신 15주 이후 낙태를 전면 금지한 미시시피주 법에 관한 위헌법률 심판에서 6대 3으로 합헌 판결을 한 것.
이로 인해 각 주(州) 정부가 독자적으로 '낙태권 존폐'를 결정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낙태권 종식'을 외쳐온 공화당 대세 주들은 낙태를 불법화하는 쪽으로 법을 강화했고 민주당이 지사직을 지내고 있는 곳들에서는 판결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렇게 일이 끝나게 되나 싶었지만, 낙태권 문제는 선거의 성패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번지고야 말았다. 2022년 11월 미 중간선거 당시 '레드 웨이브'(red wave·공화당 열풍)가 예상됐으나 공화당의 부진으로 선거가 끝나게 됐는데, 이에 대한 주요 원인으로는 공화당이 '낙태권 파기'에 앞장서면서 여론의 외면에 직면했다는 점이 꼽혔다.
2023년 11월에 벌어진 버지니아 주의회 선거, 오하이오 주민투표, 켄터키 주지사 선거에서도 낙태권 보장을 주장한 민주당 측의 약진으로 공화당이 모두 패하는 결과가 나왔다. 낙태권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던 버지니아 주의회 선거는 상·하원을 모두 민주당이 가져갔고,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켄터키주에서도 민주당이 승기를 거머쥐었다.
오하이오주에서는 낙태권 보장을 위한 법 개정 주민투표가 과반 찬성으로 통과됐다. 오하이오주는 2016년, 2020년 대선에서 모두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던 곳이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더 컨버세이션' 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인들 사이에서 낙태에 대한 지지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69%가 임신 첫 3개월 동안은 낙태가 합법화 돼야 한다고 보고 있고, 61%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것이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련의 상황에 비추어본다면 낙태 문제는 이번 대선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란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발 빠르게 이슈 선점에 나섰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바이든 대통령은 '낙태'(abortion)라는 단어를 공개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조심스러워했으나,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어진 후에는 적극적으로 낙태권 보장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자신의 부인, 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부부와 함께 버지니아주에서 열린 낙태권 보호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모든 주에서 낙태권을 보호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며 "민주주의와 자유가 투표소에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로 대 웨이드' 판결 51주년인 전날(1월22일)에는 낙태권 보장 대책 회의를 직접 주재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지고 있는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방편으로도 해석됐다. 다만 낙태 이슈와 인물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별개의 지지'를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화당은 낙태권 보장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애매한 상황이다. 전통 지지층에서는 '낙태 반대'에 손을 들고 있지만, 젊은층이나 여성과 같은 표심 확장을 위해서는 마냥 반대만 할 순 없는 아이러니한 상태다. 앞서 언급됐듯이 선거에서 줄줄이 패배를 한 점도 교훈이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을 임명함으로써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어지는데 간접적 영향을 끼쳤다는 민주당 측 공격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는 이러한 부분을 의식한 듯 지난달 폭스뉴스 타운홀 대담에 출연한 자리에서 "나는 그것(로 대 웨이드 판결 종결)을 해냈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약간의 양보가 있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러면서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cho1175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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