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외교' 키신저 20세기 미국 외교의 전설, 노벨상도 받아
- 박형기 기자
(서울=뉴스1) 박형기 기자 = 미국 외교의 전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29일(현지시간) 10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는 이른바 '핑퐁 외교'로 미중 데탕트 시대를 여는 등 20세기 미국 외교를 대표하는 미국 외교의 전설이었다.
그는 사망 직전에도 활발한 활동을 했었다. 불과 4개월전인 7월 20일 베이징을 방문, 시진핑 주석은 물론, 왕이 외교 담당 국무위원, 리상푸 당시 중국 국방부장(장관) 등 중국 최고위 관료들을 두루 만나 양국간 긴장 완화에 일조했다.
시 주석은 기후 특사인 존 케리와 미국 재무장관 재닛 옐런을 만나지 안았지만 키신저는 댜오위다오 국빈 초대소에서 직접 만났다.
이는 키신저가 미국의 대표적인 대중 온건파로 친중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국무장관 재임 시절 미중 데탕트 시대를 이끈 핑퐁외교의 주인공으로, 중국인들은 그를 ‘14억 중국인의 친구’라고 부른다.
키신저는 공화당 출신으로, 공화당 출신인 닉슨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과 백악관 외교안보보좌관을 지냈었다.
조 바이든 정권은 민주당 정권이다. 민주당 정권이 공화당 출신임에도 그를 중국 특사로 파견한 것은 그가 미국 정계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1923년 5월 독일에서 태어났다. 유대인인 그는 히틀러 정권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1938년 미국으로 이민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그는 1962년 하버드 대학 정치학 교수로 임용돼 일하다 60년대 후반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1969년부터 1973년까지 닉슨 정권 아래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다. 이후 1977년까지 국무장관을 지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1974년 닉슨이 낙마했지만 계속해서 제럴드 포드 시절에도 국무장관을 지내며 미국 외교의 중추로 남아 있었다.
그의 대표적인 외교정책이 이른바 핑퐁 외교다. 그는 구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1971년 7월 중국을 방문해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와 미중 데탕트에 합의했다. 이후 1972년 닉슨도 중국 직접 방문해 마오쩌둥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가 잠자던 중국을 깨운 것이다. 이후 미중은 1979년 정식으로 수교하고, 미중 데탕트 시대를 구가했다.
그는 베트남 전쟁을 끝낸 공로로 197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퇴임 후에도 미국 정치 외교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미국 외교의 살아 있는 전설로 통했다. 그런 그가 10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미국 외교의 살아있는 전설에서 그냥 전설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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