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회피' 외교 수사만 난무…유가족은 덩그러니[기자의 눈]

박철희 주일한국대사 및 강제징용 피해자 유가족이 25일 오전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소재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 제4상애료에서 열린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11.25/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사도시=뉴스1) 정윤영 기자 = 큰 용기와 부푼 기대를 안고 일본 땅을 밟은 사도광산 강제징용 유가족들이 사태를 회피하기에 급급한 정부의 태도에 또다시 울고 있다. 정부가 일본 측과 '합의점'에 이르지 못했다면서 개최 직전 불참을 전격 발표한 직후부터, 한일 번지르르한 외교적 수사에만 집중하고 정작 상처받은 유가족들의 마음을 달래진 못했다.

사도광산 추도식의 파행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한일 모두가 공히 책임져야 할 사태다. 지난 7월 한일이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합의 직후부터 일본이 우리의 요구에 호응해 줄지 여부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했지만, 일본도 한국도 결국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번 사안에 관여한 한 외교부 당국자는 "사도광산 추도식은 일본이 유네스코라는 국제무대에서 약속한 사안"이라며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결국 2015년 군함도 때와 같이 또 뒤통수를 맞았다. 방심에 따른 망신이든, 예견된 사태를 회피하려 했든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외교부는 일본이 단독으로 개최한 추도식에 대한 입장을 묻자 "제반사항을 고려하여 불참을 결정했다"라고 동문서답을 했다. '일본이 정부의 추도식 불참에 항의했느냐'에 대해서는 "외교 협의의 상세사항에 대해 알려드릴 수 없다"라고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그러다 돌연 정부와 유가족이 개별 추도식을 여는 것에 대해서는 "과거사에 대해 일측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우리 정부의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자평했다. 일본 측 대표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하루가 지난 뒤에야 불참을 선언하거나, 유가족을 굳이 사도광산으로 입도시킨 것은 미련의 흔적이었을까.

한일의 외교가 추도식으로 이어졌지만, 추도식은 외교도, 정치도 아닌 사도광산의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데 집중됐어야 한다. 자신의 가족이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해야 했던 사도광산에 시간을 넘고 넘어 어렵게 모인 유가족들이 목격해야 장면이 '파행'이어야 했을지 의문이다.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역사'가 기록됐어야 할 사도광산 인근 향토박물관을 둘러본 유가족 한 분이 "우리 아버님 성함이 없다"라며 씁쓸하게 웃던 모습이 곧 오늘 한일관계의 성적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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