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 광년의 고독'…전후 日 대표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 별세
우주적 세계관으로 日 문호들에 영향…작사·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 큰 족적
신경림 시인과 대시집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 출간하기도
-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일본 전후를 대표하는 현대시의 대가, 다니카와 슌타로 씨가 지난 13일 노환으로 숨졌다고 일본 언론들이 19일 일제히 보도했다. 향년 92세.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장례는 가족끼리 간소히 치러졌다.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1952년,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20억 광년의 고독'을 내며 문학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70년에 걸쳐 인간의 근원과 삶의 의미를 묻는 시를 꾸준히 엮어냈다.
눈앞의 풍경에만 얽매이지 않고 우주적으로 사고를 확장하는 다니카와 시인 특유의 세계관은 미시마 유키오·오에 겐자부로 등 당대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들에게 영향을 줬다.
그는 "시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일평생 끊임없이 추구했다. "현대시만 써서는 먹고 살 수 없다"며 작사·번역 활동을 하고 그림책을 펴내는가 하면, 최근에는 스마트폰용 시집 앱과 우편으로 시를 보내는 플랫폼을 구축해 시대에 유연하게 적응했다.
그가 펴낸 시집은 한국어는 물론 영어·프랑스어·중국어 등 20여개 언어로 번역됐다.
어렵지 않은 평이한 말로 쓰인 시는 일본어를 배우는 교재로도 활용됐고, 2019년에는 국제 상호 이해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제교류기금상'을 받았다.
이 밖에도 하기와라 사쿠타로상(1993), 마이니치 예술상(2006), 아유카와노부오상(2010년), 미요시다쓰지상(2016) 등을 받으며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작사곡 중에는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 주제가 등이 대표적이며, 1962년에는 동화 '월화수목금토일 노래'로 일본 레코드대상 작사 부문을 수상했다.
번역본 '스위미'(레오 레오니 저)·'피넛츠'(찰스 M. 슐츠 저) 등은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오랜 사랑을 받고 있다. 1975년에는 '마더 구스 메들리'로 일본번역문화상을 탔다.
한편 신경림 시인과도 대시집(對詩集)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를 출간하는 등 한국과도 연이 있는 다니카와 시인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김포 대명항에서 찍은 기념사진을 올린 바 있다.
2015년 잡지 슈푸루와의 인터뷰에서는 한국의 6.25 전쟁을 보며 "자신과 같은 세대의 병사가 죽어나가는 것이다. 보도를 접하고 전시 중이라면 자신도 징병되어 전지에 나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베트남전 무렵부터 시를 쓰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전쟁의 원인은 개인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조직 안에서 여러 사람들의 욕망과 연결되어 전쟁으로 연결되는 것"이라며 "전쟁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절실히 평화와 전쟁에 대한 생각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했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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