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명' 소수 여당 사례 따라가나…풍전등화 이시바 내각[딥포커스]
소수 여당으로는 "협력 얻지 못하면 전부 부결…정권 운영 험준해"
이시바, 선거지명 못 받으면 전후 최단명 총리…정책차 뚫고 연정 확대할까
-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이달 1일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호기롭게 단행한 '전후 최단기' 중의원 선거의 성적표는 예상보다 처참했다. 자민당이 2012년부터 4연속 놓치지 않았던 단독 과반 의석이 붕괴한 것도 모자라 공명당과 힘을 합쳐도 절반이 안 된다. 이대로 추가 세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소수 여당'의 늪에 빠지고 만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과거 소수 여당으로 수립된 내각에서는 정권 운영에 부침을 겪다가 결국 단명하고 마는 경우가 있었다.
1953년 제5차 요시다 내각은 야당과 갈등 끝에 이른바 '바카야로(바보자식) 해산'을 실시했다. 하지만 당시 여당이었던 자민당이 과반 의석을 점하지 못하고 소수 여당이 됐다. 결선투표까지 진행된 총리 지명선거에서 요시다 당시 총리가 승기를 잡긴 했지만 이듬해 내각 불신임결의안이 제기돼 취임 569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의 뒤를 이어 집권한 제1차 하토야마 내각도 소수 여당이었다. 하토야마 이치로 당시 총리는 1954년 12월에 취임해 바로 다음 달에 중의원 해산을 했지만 결국 집권 3개월 만에 초스피드로 사임했다.
1994년 4월 출범한 하타 내각은 하타 쓰토무 총리 지명선거까지 함께 보조를 맞춘 사회당이 내각 출범 직전 연정에서 이탈해 소수 여당이 됐다. 두 달 후 내각불신임안이 가결될 위기에 처하자 내각 총사직을 선택해야만 했다. 하타 총리의 재임 기간은 전후(戰後) 두 번째로 짧은 64일을 기록했다.
이시바 총리가 어떻게든 연립 정당의 틀을 확대해 과반 의석수를 확보하려는 것도 이런 뼈아픈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수 여당을 벗어나 다수당으로 정권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공명당 외에 연립 여당을 더 포섭해야 한다.
헌법에 따라 중의원을 해산하면 총선을 치른 뒤 30일 이내에 (특별) 국회를 소집해야하는데, 현재 여야는 오는 11월 11일 개최하는 방향으로 조율 중이다. 사실상 남은 시간은 보름 정도다. 이시바 총리는 총리 지명선거가 열리기 전까지 '내 편 만들기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특별국회에서는 이시바 내각은 총사직하고 이번 중의원 선거를 통해 구성된 중의원과 참의원이 각각 다음 총리를 지명한다. 과반의 지지를 얻은 후보가 없는 경우에는 상위 2명이 결선 투표에서 재대결한다.
통상적으로 여권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경우는 특별국회에서도 무난히 총리 지명자가 추려지지만, 소수 여당의 경우에는 결선까지 투표가 이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이번 특별선거에서 자민·입헌민주당 어느쪽도 다른 당과 연립하지 못한다면 총리지명선거 결선은 불투명해진다. 하지만 일본유신회 및 국민민주당 등 야당이 1차 선거에서 각 당의 대표에게 투표하고, 결선에서는 백지를 낼 것으로 예측돼 결국 과반수에 달하지 않더라도 자민당이 '소수 여당'으로 집권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시바 총리가 끝내 질 경우에는 전후 최단기간 재임한 총리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특히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크게 약진한 입헌민주당은 정권 교체에 이를 갈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당대표는 전날 후지TV와의 인터뷰에서 "총리 지명을 따러 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 상황. 어떻게든 총리 지명선거에서 쪽수를 확보하려 야권을 끌어모을 전망이다.
2차 이시바 내각으로 부활하더라도 앞날도 평탄치 않다. 정치 평론가 다자키 시로는 테레비아사히에 출연해 "앞으로 예산안과 법안 통과에 어딘가의 협력을 얻지 못하면 전부 부결된다"며 "상당히 험준한 국회 및 정권 운영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자민당은 우선 공명당과 28일, 발 빠른 정책 합의로 단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두 당은 공약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그 첫걸음은 '"정치에 대한 신뢰 회복"이라고 뜻을 모았다.
자민·공명 여권이 고려 중인 다음 연정 상대는 국민민주당이다. 기존 7석에서 4배인 28석까지 몸집을 불렸다.
자민당 191석과 공명당 24석을 더한 215석에 국민민주당까지 합세하면 여권은 총 243석으로 과반 의석(233석)을 사수할 수 있다.
이시바 총리는 개표가 마무리된 28일 새벽, 곧바로 자신의 주변에 사퇴하지 않고 정권 유지를 위해 국민민주당에 협력을 구하겠다는 의향을 전했다.
이날 오후 2시쯤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지금 이 시점에서는 (다른 당과의) 연립은 상정하지 않았다"면서도 각각의 정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잘 협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파는 달라도 함께 해나가는 자세가 국민에게 이해받을 수 있도록 가장 많은 의석을 받은 책무를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시바 총리는 이번 선거의 최대 약점이 된 당내 불법 비자금 사건의 불씨가 된 '정책 활동비' 폐지를 신속히 실현할 수 있도록 도모하겠다고 했는데, 선거 전 "향후 폐지를 염두에 두겠다"던 입장에서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것이다. 앞서 공명당과 국민민주당은 정책 활동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는 자민·공명과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부정하면서도 "정책을 실현할 수 있도록,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은 협력하고 싶다"고 여지를 남겼다.
하지만 정치 개혁 정책은 합의한다고 해도 다른 분야에서는 자민·공명·국민간 견해차가 벌어져 마찰이 예상된다.
선거에서 정치 개혁과 더불어 유권자들의 관심이 가장 높았던 경제정책에서 국민민주당은 "늘어난 세수를 환원해 국민의 실수령액을 늘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민주당은 10%인 소비세를 절반으로 줄이고 소득세를 인하해야 한다는 방침이지만 자민당은 이에 반대 입장을 갖고 있다.
외교·안전보장 분야에서도 국민민주당은 미일 동맹을 견지하면서도 평화안전법제나 미일 지위 협정 등을 재논의한다는 방침이다. 평화외교를 강화하고 법의 지배 등에 근거한 국제질서를 견지하겠다는 공명당과 온도 차가 난다.
이런 정책 격차는 향후 이시바 정권이 이어진다고 해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법안 관련 이견이 생길 때마다 국회가 파행할 수 있다는 위험 요소를 안고 가는 셈이기 때문이다. 정책 추진력과 정권 운영의 동력 모두를 상실할 수 있다.
여당 내에서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슬금슬금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비주류파에서는 "과반수가 깨진다면 이시바 총리도 퇴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내년 도쿄 도의원 선거와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이런 당내 여론이 더 거세질 수 있다.
반면 "이시바 총리가 아니었다면 선거전이 더 힘들어졌을 것"이라는 옹호론도 나오고 있다. 현시점에서 대중의 눈에 찰 만한 '새로운 얼굴'이 당내에 없다는 지적도 사실이다.
한 총리 경험자는 "표지를 갈아 끼워도 (국민의) 이해는 구할 수 없을 것"이라며 "선거에서 깨졌다고 해도 이시바 총리 그대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선거 후에는 주요 국제 회의 및 외교 일정이 이어진다. 11월 15~16일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가, 18~19일에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기다리고 있다. 내정의 혼란이 외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논평했다.
realkwon@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