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라고 부르지 마"…남북 대표, 유엔서 연일 입씨름
유엔총회 제1위원회 회의서 연속 사흘째 부딪혀
'김정남 사건' 꺼내자 北 "대결적 태도 취해 유감"
- 조소영 기자
(서울=뉴스1) 조소영 기자 = 북한이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를 돕기 위해 파병했다는 설이 기정사실화된 상황 속 이를 두고 국제 무대에서 한국과 북한 간 충돌도 연일 벌어지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미국의 소리(VOA)에 따르면 한국과 북한은 이날 뉴욕 유엔본부에서 '재래식 무기'를 주제로 개최된 유엔총회 제1위원회(군축·국제안보 담당) 회의에서 부딪혔다. 한국과 우크라이나가 북한과 러시아를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내자 북측도 참지 않고 맞받아쳤다.
권성혁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 1등 서기관은 이날 회의에서 "오늘 주제 논의 범위에 정확히 속한 북한과 러시아의 모든 불법 군사 협력은 분명히 규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과 러시아는 국제 의무 위반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대표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 전쟁에 사용하기 위해 북한으로부터 무기와 탄약, 그외 군사 장비를 조달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러시아가 앞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에 거부권을 행사한 사실을 거론하며, 이는 러시아가 전문가 패널을 "북한과의 군사, 기술 협력에 대한 걸림돌로 간주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림무성 북한 외무성 국장은 이에 반박권을 사용해 대응했다. 그는 한국, 우크라이나 등의 주장이 "북한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유엔 헌장에 따른 주권 국가 간 정당한 우호 협력 관계를 훼손하기 위한 근거 없는 유언비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서방 국가들로부터 더 많은 무기와 재정 지원을 받아 우크라이나 위기를 장기화하고 정치 권력을 유지하려는 우크라이나가 고안해 낸 또 다른 비방 캠페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북한과 러시아 간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는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국 군의 동맹과는 전혀 다르다"고 언급하는 한편 북러 간 무기 거래 의혹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림 국장의 발언에 이번에는 김성훈 한국 대표부 참사관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김 참사관은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날 '북한군 파병설'을 부인하지 않은 사실을 거론하며 "보낸 자는 부인하는데, 받는 자는 명확하게 부인하지 않고 있다. 이는 이상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그 병사들을 전혀 지지하지 않지만, 죽음의 전장에 보낸 정부가 그들의 존재를 잊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이들은 자신들을 전장으로 보낸 정부에 의해 이미 잊히고 버려진 존재"라고 말했다.
이에 림 국장이 또다시 나섰다. 다만 그는 김 참사관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왜 한국 대표는 북한을 'DPRK'(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가 아닌 '노스 코리아'(North Korea·북한)로 지칭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대한민국 외교관들이 유엔 회원국의 이름도 제대로 모르면서 국제 평화, 안보를 언급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그간 국제 회의에서 한국을 '사우스 코리아'(South Korea·남한)로 많이 지칭했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동족이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설정한 이후부터는 유엔 공식 등록명칭인 'ROK'(Republic of Korea·대한민국)로 칭하고 있다.
한편 이날 한국과 북한 간 충돌은 연속 사흘째라는 점에서 더 주목됐다.
22일 열린 유엔총회 1위원회 회의에서 윤성미 한국 군축회의 대표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문제 등 북러 군사협력을 지적하자 북한 대표는 이를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북한이 1위원회 회의에서 북러 군사협력을 부인한 적은 있지만 파병 주장을 거론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23일 '화학무기 금지'를 주제로 열린 유엔총회 1위원회 회의에서도 한국과 북한은 설전을 벌였다.
김성훈 참사관이 화학무기급지협약(CWC) 미가입국인 4개국, 특히 북한을 향해 지체 없이 가입해야 한다고 촉구하자, 북한 대표부는 주권 국가가 판단할 조약 가입 문제를 두고 한국이 핵 보유국인 북한을 가르칠 입장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김 참사관은 이에 "우리는 모두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사건을 알고 있다"며 "어떤 누구도 화학무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면서 'VX 신경작용제' 공격으로 사망한 김정은 총비서의 이복형 '김정남 사건'을 꺼내들었다.
이는 말레이시아 당국의 조사를 거쳐 북측 요원이 저지른 사건이라는 결론이 내려진 바 있다.
북한 대표는 이에 "한국 대표가 북한을 상대로 대결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부끄럽고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발끈했다.
김 참사관은 이에 재치 있게 대응했다. 그는 "이상한 일"이라며 "나는 누가 했는지가 아니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국제사회에 주의를 환기하고자 했을 뿐"이라고 받아쳤다.
cho1175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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