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문 효과 제로' 이시바 총리, 중의원 선거에서 고전하는 이유[딥포커스]
당 쇄신 앞세워 총리 됐지만 정작 '뒷돈 스캔들' 제대로 단죄 못해
"야당과 논전하겠다"면서 기습 해산…"이시바의 색깔 완전히 잃어"
-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당 총재 당선 시 '겸허한 자민당'을 강조했던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하지만 겸허해진 것은 내각 지지율이었다. 허니문 효과는커녕 출범 보름 만에 지지율 28%로 정권 유지가 '위험 수준'에 빠졌다. 오는 27일로 예정된 중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이 4회 연속으로 지켜 온 '단독 과반 의석' 신화가 깨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때 당보다 대중에게 더 지지를 받던 그의 인기가 왜 꺾였는지, 그가 지키지 않은 두 개의 약속을 통해 살펴본다.
이시바 총리가 당선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쇄신감'이었다. 자민당 의원 80명 이상이 연루된 불법 정치자금 사건의 마침표를 찍고, 잃어버린 일본 유권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때문에 총재 선거 때부터 일관되게 "규칙을 지키는 자민당"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정작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이 규칙 자체를 느슨하게 만들어버리는 모순을 범했다.
이시바 총리는 불법 정치자금 사건에 연루된 의원에 대해 당초 "자민당의 후보로서 공천하기에 걸맞은지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철저히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그다음 날 바로 "새로운 체제에서 정할 일"이라고 바로 발을 뺐다.
그렇게 신체제에서 공천하지 않은 의원은 고작 12명. 비례대표 명단에서만 제외하고 지역구 출마를 용인한 의원은 34명이다. 결론적으로 비공천 의원보다 공천 의원이 많다.
여기에 비공천된 의원들이 대표로 있는 당 지부에 2000만 엔(약 1억8135만 원) 상당의 정당 조성금이 지급됐다는 사실이 23일 추가로 밝혀졌다. 정당 조성금의 원천은 세금이다.
자민당은 신문 아카하타에 "선거에 직접적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으나 후보자의 사무소 직원 급여 등 간접적 선거자금 활용 의혹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뒷돈 스캔들로 공천받지 못한 의원에게 또다시 뒷돈을 쥐여준 꼴이다.
이시바 총리는 비공천 후보자가 소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당선된 경우에는 자민당 공식 후보자로 인정하는 '추가 공인' 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뒷돈 사건 연루자라도 선거에서 이기면 우리 편'이라는 뜻이다.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유권자는 여전히 불법 정치 자금 사건을 투표 시 "중시"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시바식 쇄신이 이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3일 후 밝혀질 것이다.
야당과의 약속도 깼다. 자민당 총재로 당선된 후 이시바 총리는 "야당 분들과도 논전을 주고받은 후에 (선거로) 심판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토반도 지진 복구비 등이 담긴 보정 예산(추가경정예산)을 논의하는 예산위원회를 먼저 열겠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취임한 지 단 8일 만에, 역대 최단 스피드로 중의원을 해산 시켰다. "국민이 (표심을) 판단할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하는 것이 새로운 총리의 책임이다. 진짜 논쟁은 예산위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무색해지는 결단이었다. 결국 야당이 제대로 선거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약해진 틈을 타 해산을 선언했다.
무라타 준이치 지지통신 해설위원은 "이시바 씨의 장점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며 "이 조기 해산론으로 이시바다움, 이시바의 색깔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탄했다. 그는 이번 해산이 "자민당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할 것"이라 분석했다. 아사히신문의 소가 다케시 편집위원 역시 "나를 포함해 완전히 기대를 배신당한 셈"이라며 "험난한 시작"을 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소가 위원은 이시바 총리가 취임후 약속한 대로 움직이지 못한 이유에 대해 우선 당내 융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짚었다. 총재 선거에서 접전 끝에 승기를 잡았고, 간부 인사에서도 라이벌이었던 후보자가 아닌 자신의 뒷배가 되어준 이들을 요직에 앉혀 자민당의 구태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그는 줄곧 당내에서 비주류파였던 이시바 총리가 "주류파가 되어 정권을 어떻게 꾸릴 것인지 노하우가 없었다"고 했다. 총재선거에 나가기 전 측근 만들기 등 밑 작업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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