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만에 되찾은 서울 시민들의 자유와 민주주의 [역사&오늘]

9월 28일, 한국전쟁 중 국군과 유엔군의 서울 수복

서울 탈환을 위한 시가전을 벌이는 국군과 유엔군. (출처: Naval Historical Center, Department of the Navy, Washington, D.C., 사진(1950),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50년 9월 28일, 한국전쟁의 격전 속에서 유엔군과 국군이 서울을 수복했다. 이는 단순한 전투 승리가 아니라 서울 시민들과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낸 역사적인 사건이다.

앞서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대한민국을 깊은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북한군은 압도적인 병력과 기갑부대를 앞세워 남하했고, 불과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점령했다. 이는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절망을 안겨줬으며, 국가의 존립은 심각하게 위협을 받았다.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가 차례로 함락되고, 국토의 대부분이 적의 손아귀에 들어가면서 국민들은 자유를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국군은 물러서지 않고 죽음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며 최후의 저항을 이어갔고, 마침내 유엔군의 참전이라는 희소식이 전해졌다.

1950년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은 전세를 완전히 뒤집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유엔군 총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유엔군은 인천에 상륙해 북한군의 허리를 끊었다. 27일 밤 서울 일대의 인민군이 전부 후퇴했다. 이 기간 중 유엔군은 500여 명이 전사하고 2000여 명이 부상을 당하는 피해를 봤다. 북한군은 1만 5000여 명이 사살되고 포로 6000여 명이 잡혔다. 다음 날 서울 탈환이 공식 선언됐다.

서울 탈환은 한국전쟁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북으로부터의 보급이 끊긴 북한군은 고립되어 궤멸되어 갔고, 한국군과 유엔군은 북진을 시작하며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었다.

서울 수복은 한국전쟁의 가장 중요하고도 극적인 전환점 중 하나였다. 이날은 단순한 군사적 승리를 넘어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