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는 두 동강 났지만 핏줄은 끊지 못했다 [역사&오늘]

9월 21일, 분단 후 최초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

2014 설 계기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 첫날째인 20일 북한 고성 금강산 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행사에서 남측의 이영실(88. 오른쪽)씨가 북측의 동생 리정실 씨를 만나고 있다. 이번 상봉행사는 지난 2010년 10월 이후 3년 4개월만이다. 2014.2.20/뉴스1.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85년 9월 21일, 남북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됐다.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진행된 이산가족 상봉은 냉전 시대의 긴 그림자 아래 놓인 남북한의 현실을 알려주며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감동과 충격을 동시에 안겨줬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헤어진 가족들은 오랜 세월 동안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아 왔다. 남북은 이러한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고, 1985년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해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을 교환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남측 35명과 북측 30명이 이산가족이 고향을 방문해 가족과 재회하게 되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았다.

마침내 1985년 9월,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을 교환하는 행사가 열렸다. 상봉 현장은 감격과 슬픔이 뒤섞인 감동의 도가니였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으며, 한편으로는 짧은 만남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헤어진 지 너무 오래되어 얼굴을 몰라보는 경우도 있었지만, 가족임을 직감하고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미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1985년 이산가족 상봉은 단순한 행사를 넘어 남북 관계 개선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많은 이산가족들이 여전히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남북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서 이산가족 상봉이 몇 차례 이루어졌지만, 남북 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상봉은 중단됐다. 그런 가운데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에 시달리고 있다. 매년 수많은 이산가족이 상봉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있다.

1985년 이산가족 상봉은 우리에게 분단의 아픔과 화해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이산가족 문제는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우리 국가, 우리 국민이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