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금지곡'에서 韓 대중음악의 격을 높인 노래로 [역사&오늘]

8월 27일, 김민기의 '아침이슬' 발표

'아침이슬'이 수록된 김민기 1집과 '아침이슬' 검열 자료.(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70년 8월 28일, 불후의 명곡 '아침이슬'이 발표됐다. 김민기가 작사·작곡한 이 노래는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우리들의 이야기이자 희망을 꿈꾸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담은 곡으로, 한국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 곡은 처음에는 양희은의 노래로 발표됐고, 이듬해인 1971년에는 김민기의 독집 음반으로 출시됐다. 김민기는 자연을 사랑했고,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특히 아침이슬이라는 아름다운 자연 현상은 그가 꿈꾸는 희망과 순수함을 상징한다. 그의 젊은 시절의 고뇌와 좌절,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 등도 가사에 투영됐다.

'아침이슬'은 한국적인 서정적 포크송 분위기로 젊은이들에게 공감을 사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원래 순수한 자연을 노래한 것이었으나, 당시 한국의 경직된 사회적 상황을 은유하는 내용으로 해석됐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라는 가사는 대중에게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억압된 현실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라는 가사는 죽음과 탄생, 어둠과 빛의 대비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묻는 것으로 해석됐다.

'아침이슬'은 발표 당시 '건전가요 서울시문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 노래가 반정부 시위에 사용되자 1975년 유신 정권은 이를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태양이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른다'는 내용이 불순하다고 문제 삼았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아침이슬'의 의미를 더욱 부각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침이슬'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노래가 됐다. 특히 1987년 민주항쟁 당시 '아침이슬'은 시민들의 저항 정신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아침이슬'은 오늘날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에게 공감과 위로를 선사하며 한국 대중음악의 격을 높인 명곡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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