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을 앞당겼으나 새로운 핵 공포가 시작되다" [역사&오늘]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투하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직후의 모습. (출처: U.S. Navy Public Affairs Resources Website, 흑백사진(1945),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Dedicatio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45년 8월 6일,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에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이는 일본의 패망과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비극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연합군은 일본 본토 침공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항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연합군은 전쟁의 조속한 종결을 위해 신무기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맨해튼 계획을 통해 개발된 원자폭탄이었다.

미국은 일본에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발표했지만, 일본은 이를 거부했다. 이에 미국은 일본의 주요 도시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로 결정하고, 히로시마를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히로시마는 군사시설과 교통의 요지였으며, 원자폭탄의 위력을 시험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판단됐다.

당일 오전 8시 15분, B-29 폭격기가 히로시마 상공 9750m 지점에서 '리틀 보이'라는 핵폭탄을 투하했다. 이 폭탄은 지상 500m 상공에서 폭발했고, 순간적으로 7000도에 이르는 고열과 섬광, 충격파가 발생했다. 그 결과는 인류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끔찍한 광경을 연출했다. 히로시마 시내는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고, 시민 25만 명 중 7만 명이 초기 폭발로 인해 사망했다. 부상자 수도 이와 비슷했다.

방사능 피해로 인한 후유증도 심각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 중 많은 사람이 방사능 노출로 인해 평생 고통받았고, 암 발생률도 급증했다. 히로시마는 오랜 시간 동안 방사능 오염 지역으로 남았고, 도시 재건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일본은 3일 후인 10일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을 맞고 나서야 비로소 무조건 항복했다. 두 도시에 대한 원폭 투하는 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인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 사건은 핵무기의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줬으며, 핵무기 확산 방지와 세계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