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외교 수장이 된 조선 도공의 후예" [역사&오늘]
7월 23일, 전 日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 사망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50년 7월 23일,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외무대신을 지낸 도고 시게노리가 사망했다. A급 전범 중 유일한 조선계 일본인으로, 귀화 전 한국식 이름은 박무덕이다.
도고 시게노리는 1882년 일본 가고시마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박수승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온 조선 도공 박평의의 후손이며, 어머니인 박토메도 조선인 후손이다. 1886년 박수승이 도고(東鄕)라는 사무라이 족보를 매입해 도고 시게노리라는 이름으로 살게 됐다.
도고는 명문 가고시마 제7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독문과를 졸업하고 외교관 시험에 합격해 외교관으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독일, 소련 등 주요 국가에서 대사를 역임하며 뛰어난 외교적 능력을 보여줬다.
1941년, 도고는 외무대신에 임명됐다. 그는 미국과의 전쟁을 피하려고 노력했으나 군부의 힘과 미국의 강경한 태도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진주만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고, 이때 일본의 대미선전포고가 공격 개시 이후에 전달되는 바람에 종전 후 A급 전범으로 분류됐다.
도조 히데키 총리와의 마찰로 외무대신 자리를 물러났던 그는 1945년 일본의 패색이 짙어진 가운데 스즈키 간타로 내각의 요청으로 전쟁 종결 처리를 위해 다시 외무상에 기용됐다. 그는 미국·영국·소련 3국 정상이 모여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 선언에 대한 무조건 수락을 주장해 군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시켰다. 그는 막무가내로 버티려는 군부와 달리 모든 것을 버리고 천황제 하나만 유지하는 데 진력을 쏟았다.
1945년 일본 패전 후, 도고 시게노리는 A급 전범으로 체포되어 극동 국제군사재판에서 금고 2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스가모 구치소에서 '시대의 일면'이라는 회고록을 집필하던 중 병사했다. 일본에서 조선계라는 악조건을 딛고 자수성가했지만, 격변의 시대 속에서 파란만장한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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