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서 미성년 도촬 혐의 주일 외교관, 불체포특권으로 처벌 면하나

현장서 범행 들키고 범행 장면 확보했는데 입건조차 안 돼
반년 사이 700여장 촬영 추정…임의동행 요청엔 "외교관이라"

주일 싱가포르 대사관 입구. (출처 : 구글맵)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주일 싱가포르 대사관의 한 남성 참사관(55)이 목욕탕에서 미성년자를 도촬한 혐의로 경시청에 사정청취 조사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아사히신문이 2일, 수사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참사관은 범행 당시 도촬을 인정하면서도 외교관이라는 명분을 대며 현장을 떠났다. 사건은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도촬 혐의를 받는 참사관은 싱가포르 국적으로, 대사관 간부급 직책이었지만 그만둔 것으로 파악됐다.

복수의 수사관계자는 참사관이 지난 2월 27일 밤, 도쿄도 미나토구(区) 소재 목욕탕의 남성 탈의실에서 스마트폰으로 남성 미성년자의 나체를 촬영한 혐의를 받는다고 밝혔다.

목욕탕 측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참사관의 스마트폰을 살펴본 결과, 탈의실 내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남성 고객의 사진이 여러 장 발견됐다. 참사관은 "자신이 찍은 것은 틀림없다"고 인정했다.

경찰관은 서로 임의 동행을 요구했지만 참사관은 "여기에서 받은 질문에는 대답하겠다"며 경찰서로 이동하는 것은 거부했다.

피해 남성의 보호자는 도촬한 사진을 삭제하도록 요청했고, 그 자리에서 참사관이 스스로 삭제했다.

참사관은 경찰에 다른 목욕탕에서도 도촬을 했다고 털어놨는데, 이날 삭제한 사진의 양만 700장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모두 반년간 찍은 것들이다.

물증뿐만 아니라 범행 장면도 확보됐다. 목욕탕의 방범 카메라에 참사관이 다른 남성 고객을 향해 스마트폰 카메라를 비추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참사관은 "왜 이런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시청은 싱가포르 대사관 측에 수사기관 출두를 요청하기 위해 외무성과 경찰청과 협의 중이다. 서류 송치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관에게는 빈 협약에 따라 체포 등 신병 구속 및 재판을 면제받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사건·사고를 일으켜도 보통 체재국에서 죄를 추궁당하는 경우는 없다. 싱가포르 참사관의 도촬 사건 발생 직후 사전청취 조사조차 실시되지 않은 이유다.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강제 외설 행위 및 불법 카지노, 일본 기업 기밀 정보 누설 등 해외 외교관들의 범법 행위가 종종 발생했다.

또 외교관 차량이 주차위반을 하고도 벌금을 내지 않는 일도 빈번해 외무성은 2021년 5월부터 방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한 경찰 간부는 "외교관이라고 얘기하는 순간, 임의동행해도 최종적으로 체포할 수 없다. 그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동행을 요구하는 일을 삼가게 된다"며 현장 대응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문제를 일으킨 외국 외교관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페르소나 논 그라타'가 있다. 수락국의 판단에 따라 특정 외교관을 기피 인물로 지정해 파견국이 직접 본국 소환 및 해임하게 하는 조처다.

한국에서는 2019년, 북한 관련 군사 기밀 74건이 주한 일본대사관에 파견된 자위대 영관급 장교 2명에게 넘어가 검찰이 일본 장교 1명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에 해당한다며 외교부를 통해 일본에 전달한 바 있다. 당시 일본은 이를 수용해 해당 장교를 조기 귀국시켰다.

realk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