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록 없다더니'…간토 조선인 대학살 새로운 日공문서 발견
"조선인 40여명을 살기 품은 군중이 살해"
-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100년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이 불법적으로 일본인 손에 자행됐다는 것을 증빙하는 일본 공문서가 새로 발견됐다고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25일 보도했다.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1923년 9월1일 직후 조선인 집단 학살이 있었는데 같은해 11월 당시 육군성이 실시한 실태조사 일부 자료에서 조선인 40여명이 살기를 품은 군중에 의해 모두 살해됐다는 내용이 발견된 것이다.
올해 8월 마쓰노 히로이치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사건에 대한 견해를 묻자 “정부 내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문서가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문서는 사이타마현 서부의 5군을 관할하면서 징병이나 재향 군인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던 육군 지방 기관인 구마가야 연대구 사령부가 작성한 보고서다. '관동 지방 지진 재해 관계 업무 상세보'라는 제목의 문서로, 저널리스트 와타나베 노부유키가 발견했다.
육군성 부관은 1923년 11월2일 대지진과 관련한 모든 부대 활동을 같은 달 25일까지 육군 장관 및 참모총장에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구마가야 연대구 사령부는 그해 12월15일자로 이 보고서를 뒤늦게 제출했다.
당시 학살은 '행동의 대요'에서 기술되어 있었다. 1923년 9월4일, 경찰의 보호를 받던 조선인 200여 명이 우라와 지역에서 후카가야 혼조 경찰서까지 차량으로 호송되고 있었는데, 낮에 이송하지 못한 40여 명은 밤중에 구마가야구 각지에서 몰려든 군중에 의해 모두 살해당했다고 보고됐다.
사이타마현의 조선인 학살은 대규모였던 가나가와와 도쿄보다 늦게 일어났다. 특히 이 지역에선 경찰서의 보호를 받거나 호송 도중에 군중에게 습격당하는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후 50~60년이 지난 후 현지 연구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확인된 희생자 수는 최소 193명, 증언만 있는 미확인 30~47명을 더하면 총 223~240명이었다고 한다. 발견된 보고서의 40여명은 그 일부로 보인다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각지의 학살에는 재향군인이 주로 가담했다. 하지만 공식 보고서에는 이 사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이 보고서는 일본 국립공문서관 아시아역사자료센터 홈페이지에서 열람할 수 있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 홈페이지엔 와타나베의 해설이 실려 있다.
간토대지진은 일본 가나가와현 일대를 진앙으로 해서 발생한 최대 규모 7.8의 지진이다.
지진 발생 후 일본 내에선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 약탈을 하면서 일본인을 습격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자경단, 경찰, 군인 등이 재일 조선인 6661명(독립신문 기록)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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