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브리핑]"느그 고모 뭐 하시노"…구직난 기름부은 '수혈언니'

공무원 헌혈 동원에 '분노'…웨이보 금지어로 지정돼
'고모는 퇴직 노동자' 해명에도 젊은층 불만 표출 이어져

헌혈을 위해 아리시 공무원이 동원됐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SNS 등을 통해 확산했다.

(베이징=뉴스1) 정은지 특파원 = 중국 청년들이 역대급 '취업난'으로 겪고 있는 가운데 서부지역에서 발생한 한 건의 교통사고가 젊은이들의 분노를 촉발하고 있다.

11일 중국 현지 언론 및 SNS 등을 종합하면 상하이 출신의 신혼 부부는 지난 10월 시장(티베트)자치구로 여행을 갔는데, 아리(阿里) 지역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당시 발생한 교통사고로 위 씨는 현지 병원에서 대규모 수혈을 받았고 전세 비행기 편을 이용해 쓰촨으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진다.

평범한 교통사고로 일단락될 것 같았던 이 사고가 논란이 된 것은 사고 발생 한달이 넘은 지난달이다. 위 씨의 남편 타오씨가 사고 직후 긴급했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주고받은 메시지가 SNS을 통해 확산됐다.

타오 씨가 SNS 계정에 올린 게시글에는 "작은 고모가 상하이시 위생보건위원회에 연락을 했고, 위생보건위원회가 아리시 관련 부문을 동원해 아리 자치구의 전체 공무원, 경찰, 소방관, 일부 군인이 헌혈을 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타오 씨는 아리 지역에서 A형 혈액을 확보함에 따라 약 7000ml의 피를 흘린 자신의 아내를 구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해당 게시글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자 젊은층을 중심으로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었다. 도대체 어떤 집안의 자제이기에 아리 지역의 공무원을 모두 동원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됐고 보건당국에 연락을 취한 작은 고모가 관련 당국 고위직이 아니냐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확산됐다.

또한 위 씨가 아리에서 쓰촨 지역으로 이송될 때 탑승했던 전세기가 120만위안(약 2억2000만원)에 달한다는 점 등을 거론하며 기득권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게 관찰됐다.

누리꾼들은 해당 여성을 '쉐차오제(血槽姐·수혈 언니)'라는 별명으로 불렀는데 결국 결국 해당 키워드는 중국 SNS 웨이보에서 검색 금지어로 지정됐다. 해당 사건이 미칠 파장에 대해 당국이 예의주시 하며 통제에 나선 것이다.

22년 8월 26일 한 청년이 베이징에서 열린 취업 박람회에 참석하고 있다. 7월 17일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6월 중국 청년 실업률이 21.3%로 증가하며 기록을 경신했다고 한다. 2022.08.26/ ⓒ AFP=뉴스1 ⓒ News1 윤주영 기자

젊은층이 이번 사건에 대해 더 크게 분노한 것은 이들이 직면한 최악의 취업난과도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아리 공무원을 동원했다는 내용의 SNS가 확산한 시기는 중국 공무원 시험인 '궈카오' 시기와 맞물렸다.

지난달 26일 실시된 궈카오 응시자는 303만3000명으로 원서 마감 직후의 잠정치(291만3000명) 대비 10만여명이 늘어났다. 궈카오 응시자가 300만명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였는데, 이는 최근 중국의 실업률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로 거론된다.

특히 이번에 '수혈언니' 구조에 동원된 것으로 알려진 아리시는 2022년 공무원을 뽑는 2021년 궈카오에서 가장 높은 경쟁률을 배출한 곳이라는 점에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당시 아리시 우정국(우체국)에서는 경력이나 학력과 무관한 1명의 직원을 뽑는다고 공고했는데, 이 자리에 지원한 사람은 2만2000명이 넘었다.

이 때문에 누리꾼들은 "2만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이 됐는데 헌혈에 동원이 되어야 하느냐", "한 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 모두가 달려드는 사건을 최근에 본 기억이 없다", "도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막강한 힘이 있느냐" 등의 반응을 내놨다.

사건이 확산되자 당국도 조사에 나섰고, 해당 부부와 고위층과의 연관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작은 고모가 모 기관의 국장이다', '작은 고모가 기율위원회 서기다' 등의 '가짜뉴스'를 확산한 SNS 계정도 단속했다.

상하이에 본사를 두고 있는 펑파이신문과 상관신문이 특별취재팀을 꾸려 이번 사건에 이른바 '팩트체크' 형식으로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해당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작은 고모'는 올해 60세로 한 공예품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다 퇴직한 인물이고, 가족의 사고 소식을 접한 후 며느리가 자기가 근무하는 은행의 상사 등에 도움을 요청한 끝에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팩트체크' 보도를 한 펑파이신문과 상관신문이 상하이시 위원회 소속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해당 보도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한다.

언론도 나서서 해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논란이 쉽게 사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은 최근 중국이 맞닥뜨린 경기 침체 우려와 최악의 취업난 등으로 인한 정부를 향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를 그대로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발병으로 연기됐던 연례 '가오카오' 대학 입학 시험장 밖 마스크를 쓴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이서영 기자

최근 교육부는 전문대를 포함한 내년 대학 졸업 예정자수는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던 올해(1158만명) 보다 21만명 늘어난 1179만명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베이징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20대 여성은 "최근 중국 취업난이 매우 심각해 대학을 졸업하고도 석사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석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형 프렌차이즈 식당에서 서빙과 같은 단순 업무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ejju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