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한 J-아이돌 왕국…K팝에 적극적 윤리 경영이 필요한 이유[기자의눈]
1950년대부터 성착취 관련 소문 돌았지만 침묵 일관
K팝 업계의 타산지석 삼아 컴플라이언스 강화 계기로
-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J팝의 금자탑이 무너지고 있다. 스맙(SMAP)·토키오·V6·아라시 등 숱한 인기 남성 아이돌을 키워낸 일본 엔터테인먼트사, 쟈니스의 이야기다.
지난 3월 BBC가 쟈니스를 세운 창립자 쟈니 기타가와의 오랜 미성년자 성 착취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를 발표한 후로 쟈니스는 이른바 '손절'의 대상이 됐다. 공영 NHK는 쟈니스 소속 연예인 출연을 사실상 금지시켰고 산토리 등 대형 광고주들은 계약을 끊고 있다.
문제가 커진 것은 지난 3월부터지만 쟈니스와 일본 사회는 보다 오래 기타가와의 범죄에 침묵해 왔다. 침묵이 위로가 될 때도 있다지만 어떤 침묵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본의 침묵은 70년간 성 착취 피해자들의 영혼을 파괴했다. 성범죄를 방관한 회사·언론·사회가 낳은 병폐다.
◇방 안의 코끼리였던 오너 리스크
도쿄신문에 따르면 쟈니 기타가와가 연예인 데뷔를 희망하는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착취한다는 소문은 1950년대부터 돌았다.
하지만 '쟈니상'이라 불리는 독보적인 프로듀서의 실체를 파헤치려는 이는 없었다. 1999년 슈칸분슌이 처음 쟈니스 내 미성년자 성 착취를 공론화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쟈니스는 슈칸분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나 법원은 보도 내용이 사실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법원이 기타가와의 성 착취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쟈니스가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일은 없었다. 언론들이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쟈니스는 아라시·캇툰 등의 그룹이 연이어 성공을 거두며 미디어계에서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각 방송사에는 쟈니스 아이돌이 고정 출연하는 예능 방송들이 편성됐으며 정보방송, 뉴스에는 쟈니스 연예인이 패널 및 뉴스 캐스터로 기용됐다.
그 사이 토키오 멤버 야마구치 다쓰야의 고등학생 성추행, 뉴스 멤버 고야마 게이치로·가토 시게아키의 미성년자 동석 음주 사건 등이 연이어 터졌다. 이때마다 쟈니스는 "사내 컴플라이언스(윤리 경영)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문제는 반복됐다.
쟈니스가 공개적으로 성 착취를 인정하고 사죄 기자회견을 연 것은 24년이 지나 외신 보도로 세계적인 비판의 눈길이 쏠리고 나서다. 외부 지적이 들어오기 전까지 개과천선 수준의 자정 노력은 없었던 셈이다.
BBC 보도 이후 쟈니스는 쇠퇴 일로를 걷고 있다. 유엔 인권위원회의 조사대상이 됐으며 기타야마 히로미쓰·히라노 쇼·진구지 유타·기시 유타 등 소속 연예인들이 줄지어 퇴사하고 있다. 지난 9월30일에는 새로운 성 착취 피해자가 증언에 나섰고, 창업자이자 가해자인 쟈니의 이름이 들어간 사명과 각 그룹명(칸쟈니8·쟈니즈웨스트 등)도 변경해야 할 위기에 놓였다.
◇쟈니스를 K팝의 타산지석으로
지난 27일 일본 문화청은 아시아판 그래미상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블랙핑크, 방탄소년단 같은 글로벌 아티스트 양성을 위해 해외 진출의 발판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국제적 상을 만든다고 세계적 아티스트가 절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히트의 핵심은 노래와 퍼포먼스 안에 담긴 가치다.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으로 각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를 사랑하라(Love Myself)는 보편적 가치를 녹여냈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가치와 개인의 신념에 기반해 소비를 결정하는 '미닝아웃 소비' 트렌드와도 일맥상통한다. 지난해 한국리서치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3%가 소비 활동에서 미닝 아웃을 실천한다고 답했다. 상품의 완성도를 넘어 기업이 중하게 여기고 추구하는 가치까지 소비자의 잣대에 포함된다는 뜻이다.
빌보드를 비롯해 세계 차트를 석권하고 있는 K팝 업계라면 쟈니스의 사례를 J팝의 몰락이라고 비웃을 수만은 없다. K팝 업계에서도 그간 성범죄·마약 복용 등 범죄의 선을 넘는 사례가 발견된 만큼 윤리 경영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realkwon@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