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성공한 일본, 내친김에 진·럼·브랜디까지…전통 증류소의 변신

일본산 진, 5년 사이 수출액 2배로 껑충…일본주 수출액의 3배

일본의 차세대 증류소 '미토사야'의 누리집 갈무리. 2023.09.18/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일본의 증류주 시장이 더 다채로워지고 있다. 양조장의 대물림 과정에서 생산 품목이 진·럼·브랜디까지 확대되며 동서양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추세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일본 위스키의 성공이 일본 증류주에 대한 수요를 불러 일으켰다고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독창성도 일본 증류주의 매력이며 시장 트렌드에도 부합한다는 평이다.

일본주 양조장은 전통을 중시하는 경향이 센 만큼 서양 증류주 도입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독일 유학을 다녀와 일본에서 에구치 히로시 씨는 일본 양조장계의 이단아다. 20여 년 전 우연히 꽃과 럼, 크림이 들어간 칵테일을 접하고 그 맛에 빠져버려 네 식구를 데리고 유학길에 올랐다.

지난 2018년 일본으로 돌아와 지바현(県) 오타키에 버려진 정원을 인수했다. 그는 1987년부터 온실 2동에 500여 종의 식물이 자라나는 이 낡은 정원을 '미토사야 보태니컬 증류소'로 탈바꿈시켰다.

플라워 칵테일에 영감을 받은 만큼, 이곳에서 그는 차·잼·브랜디·미숙성 과일 브랜디 등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본주와 매실주 같은 전통주를 생산하던 100년 묵은 양조장에서 만든 크래프트 일본 증류주가 대세를 이을 것으로 예측한다.

아직 이익 마진과 대중성이 높지는 않지만 잠재 수요는 분명하다. 일본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자국산 진 수출액은 43억 엔(약 386억 원)을 기록했다. 5년 사이에 2배로 증가한 셈이며, 일본주(소주) 수출액의 3배에 이른다.

SCMP는 일본 양조장의 자녀, 손자 세대가 이같은 물결에 뛰어드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미 가고시마현(県)내 일본주 양조장 중 10%는 진 주조에 돌입했다.

단순히 트렌드 따라가기가 아닌 양조장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소주 핸드북'의 저자 크리스토퍼 펠레그리니는 "다른 나라에 비해 일본 주류 산업은 젊은 층이 선호하지 않는다. 따라서 젊은 세대의 증류주 생산자들은 새로운 해결책으로 일회성(비전통 증류주) 상품을 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1955년 창립한 일본주 회사 '사타 소지 쇼텐'은 처음에는 매실주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유럽 유학을 위해 2006년 자체 브랜드 '아카야네'를 런칭하고 현재는 진, 브랜디, 압생트, 보드카까지 생산하고 있다.

이 같은 크래프트 증류소의 도전은 해외 브랜드의 일본 진출을 촉진하고 있다. 홍콩 브랜드 '퍼퓸 트리스 진'은 홋카이도에 증류소를 열었다.

퍼퓸 트리스 진의 공동 창립자는 "전 세계 사람들, 특히 아시아 시장에서는 일본산이 곧 고품질로 통한다. 홍콩 브랜드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전 세계 고객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realk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