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부터 삐걱댄 가자 휴전…이스라엘-하마스 불신에 '살얼음판'
이스라엘, 애꿎은 서안 때리기…하마스는 가자에 재등판
트럼프의 의지가 가장 중요…"노벨상 열망 무시 못해"
- 박재하 기자

(서울=뉴스1) 박재하 기자 = 전쟁 발발 15개월 만에 성사된 가자지구 휴전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대신 서안지구에서 연일 군사 작전을 벌이며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고, 하마스 역시 이스라엘군이 떠나자 보란 듯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다.
이에 가자지구 휴전 성사에 핵심 역할을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지가 휴전 유지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지난 15일 전쟁 발발 466일 만에 3단계로 구성된 휴전과 인질 석방 합의에 도달했다.
6주간 지속되는 휴전 1단계에서 하마스는 인질 33명을 점진적으로 석방하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수감자 약 1900명을 풀어준다. 또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서 점진적으로 병력을 철수해야 한다.
이후 양측은 휴전 16일째에 이스라엘 남성 군인의 석방, 영구적 휴전,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완전 철수 등 2단계를 위한 협상에 돌입한다.
마지막 3단계에서는 이집트와 카타르 등 중재국과 유엔의 감독 아래 가자지구의 재건 작업이 이뤄진다.
이처럼 휴전 합의안이 어렵게 마련됐지만 실제로 발효되기 직전까지 진통이 끊이지 않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16일 하마스가 합의안 내용 일부를 파기했다며 이를 승인하기 위한 내국 투표를 연기했다. 다음날 그는 하마스와 합의가 이뤄졌다며 내각 회의를 소집했고, 휴전 합의안은 18일에 최종 승인됐다.
이에 따라 휴전과 인질 석방은 19일 오전 8시30분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석방할 인질 명단을 제때 제출하지 않으면서 약 3시간 지연됐다.
현재까지 휴전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지만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긴장은 여전히 고조된 상태다.
가자지구에서 공격을 멈춘 이스라엘군은 휴전이 성사된 지 이틀 만에 하마스 연계 세력을 소탕하겠다며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대대적인 군사작전에 나섰다.
이에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가자지구 휴전에 반발하며 연정을 탈퇴하겠다고 협박한 극우 세력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서안지구를 공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만약 이들 극우 정당이 연정을 탈퇴할 경우 네타냐후 총리는 실각하게 된다. 이때문에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작전을 통해 극우 세력의 숙원 사업인 서안지구 합병을 위한 물밑 작업에 나섰다는 지적이다.
가자지구 휴전 중재국인 이집트 외무부는 이와 관련해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은 잠재적으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군이 떠난 가자지구에서는 자취를 감췄던 하마스가 다시 나타나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하마스가 휴전이 발효된 19일 무장하고 제복을 입은 채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 행진하며 세력을 과시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도 하마스 산하 경찰과 무장대원들이 가자지구 곳곳에 배치돼 잔해 제거를 감독하거나 구호 차량을 호위하는 등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기드온 사르 이스라엘 외무부 장관은 이에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권력을 유지한다면 평화와 안정, 안보의 미래는 없다"며 휴전이 파기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결국 휴전 유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기 종전'을 공언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휴전 성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2단계 휴전 협상을 성사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실제로 이스라엘을 방문해 합의안이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의 군사 분석가 아모스 하렐도 "네타냐후 총리는 휴전 2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꺼리고 있다"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이스라엘의 여론이 휴전 합의를 준수하게 하는 압력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벨평화상을 향한 트럼프의 오랜 열망 역시 가자지구 휴전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시절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 간 국교 정상화를 위한 '아브라함 협정'에 대한 공로로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지만 수상하지는 못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 외교관계 수립에 큰 관심을 보여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놔버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워싱턴근동정책연구(WINEP)의 데이비드 마코브스키는 "이스라엘-사우디 수교를 통해 노벨평화상을 원하고 있다"라며 "이는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 확대와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주둔과는 병행될 수 없다"고 전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일 "(가자지구 휴전이) 계속 이어질지 확신할 수 없다"라며 회의적인 시선을 드러낸 만큼 속단하기는 이르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사남 바킬 중동국장은 "이번 합의는 종전이 아니라 취약한 휴전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라며 "협상 중재국들의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책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jaeha6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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