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피난민들…환희와 절망 뒤섞인 레바논
매트리스·헤즈볼라 깃발·나스랄라 포스터 실은 자동차 행렬 이뤄
유엔 집계 피난민 약 90만 명…파괴 및 손상 주택 약 10만 채
- 정지윤 기자
(서울=뉴스1) 정지윤 기자 =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휴전에 합의하자 피난길을 떠났던 레바논 주민들이 귀가길에 오르고 있다.
로이터통신과 AFP통신에 따르면 27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의 도로에는 새벽부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자동차들이 행렬을 이뤘다.
피난민들은 자동차에 매트리스를 매달고 집으로 돌아갔다. 자동차 창문에 걸린 헤즈볼라 깃발이 펄럭이기도 했다. 지난 9월 27일에 사망한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포스터로 장식된 차량도 보였다.
한 여성은 동네로 차를 몰고 가며 박수를 쳤고, 한 남성은 건물에서 폭격으로 뚫린 거대한 구멍에 양손을 내밀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기쁨을 표했다.
그러나 베이루트 중심부는 합의 직전까지 계속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초토화된 상황이다. 베이루트의 주거 및 상업 지역 건물들은 무너지거나 기울었고 전선이나 가재도구들이 실바닥에 널부러져 있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주택에 피해를 입은 베이루트 주민 라메즈 부스타니는 "결국 사라진 건 사라진 것"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그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다시 전쟁이 일어날지, 제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지, 혹은 여기서 상황이 끝나고 합의가 이뤄질지 정말 모른다"며 불안감을 표했다.
다른 주민 움 모하메드 브제이는 휴전이 발표되자마자 레바논 남부의 집으로 돌아갔지만 파손된 주택을 맞닥뜨렸다. 브제이는 집안에 있던 물건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커튼이 찢기고 부엌에서 음식이 썩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록 창문이 깨졌지만 우리가 머물 수 있도록 방을 청소하고 있다"며 "파괴되고 슬프지만 다시 돌아와 기쁘다"고 전했다. 브제이는 지친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유리 조각과 돌덩이를 쓸며 "마치 우리의 영혼이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유엔 국제이주기구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갈등으로 레바논에서 발생한 이재민은 약 90만명에 이른다. 세계은행은 레바논 전역에서 최소 10만채의 주택이 피해를 입거나 파괴됐다고 집계했다.
레바논 해안 도시 티레를 거쳐 남쪽으로 향하던 남성인 케드르는 "남쪽의 흙과 남쪽의 향기만큼 좋은 것은 없다"는 말을 남기고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떠났다.
stopy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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